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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요 며칠, 북극의 한파가 몰아친다고 아우성이다. 어쩐지 요 네스뵈의 나라 노르웨이의 추운 겨울을 조금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눈이 오지 않는데도 창 밖을 내다보면 거리의 헐벗은 나무들은 눈더미를 얹고 있을 것 같고 공터에는 기묘한 눈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을 것만 같다. 눈사람들은 커다란 몸 안에 무언가 끔찍하고 무서운 것들을 품고 있을 테고,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옆을 신나서 뛰어다니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써낸 순서대로 읽을 생각으로 그 순서를 검색해 책장에 차례대로 세워놓았었다. 그래서 순서에 맞춰 처음 읽은 작품도 <박쥐>였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 이 제목처럼 어울리는 작품을 읽지 않을 수가 없어서 곧바로 <스노우맨>으로 뛰어넘었다. 또한 아무래도 최근작이니만큼 더 재미있을 것도 같았고, 그 예상이 맞았다.
가정이 있는 여인들이 아무 흔적도 없이 자꾸만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진 곳엔 아무도 세우지 않은 눈사람만이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개별적인 사건, 가정에서 벗어나고픈 여인들의 가출이라고만 생각했던 사건을 강력반의 형사반장 해리 홀레는 연쇄살인으로 의심한다. 그리고 그에게 날아든 살인범의 편지. 과거의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파트너의 자리엔 아름답지만 퇴폐적인 눈빛을 한 여형사 카트리네가 나타나 명민하게 일을 돕는다. 여인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그들의 수사는 집요하게 이어진다. 홀레는 증거를 얻기 위해 참여하고 싶지 않던 TV토크쇼에도 참여하는 등 열정적으로 수사에 임한다. 천천히 범인을 뒤쫓는 추격망을 좁혀가지만 잡았다싶어 다가가보면 헛다리만 짚고 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위기의 순간 홀레는 범인의 올가미에서 타깃을 풀어낸다.
하얀 겨울이면 친근하게 마당을 장식하곤 하는 눈사람이 무서운 메시지를 담은 모형으로 사용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마치 공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스노우맨>이 진짜 공포소설이었다면 살인을 예언하는 눈사람에게는 어떤 마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포소설이 아니기에 눈사람은 그냥 눈사람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예고장보다도 위압적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다만 피해자들은 눈사람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몰랐지만 말이다. 피해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라보는 정경에 스쳐가듯 보이는 눈사람,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는 오싹한 기분이 들어 경고라도 해주고 싶지만 사건은 예정대로 벌어지고야 만다.
남편과 다른 핏줄의 아이들을 키우는 여자들은 창녀인가?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이들을 책임지지도 않고 여전히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사는데,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은 육아를 담당하면서도 신체의 자유는커녕 세상의 시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녀들이 핏줄이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란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나자 그 자리에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남았다. 그녀들이 죽음으로써 과연 세상은 더욱 좋아졌을까?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아닐까? 이 세상에 그 누가 다른 사람의 과오에 대해 대신 벌할 자격이 있겠는가. 자기 자신의 티끌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 했듯이 아무도 누군가를 대신 벌할 자격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그저 끊임없이 자신의 과오와 티끌을 덜어내고 털어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뿐이다.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자신이 죽게 될 순간을 맞닥뜨린 피해자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페이지에선 나조차 숨을 죽였고, 홀레가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찾으려 애쓸 때 나는 저자가 스치듯 깔아놓는 복선이 있는지 살폈다. 그럼에도 홀레가 엉뚱한 사람을 범인이 아닌가 생각하면 나 역시 머리를 갸웃거렸다. 저자가 보여주고 감추는 그대로 깜박 넘어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면서부터 범인의 윤곽을 어느 정도 잡은 터라 신중한 홀레 반장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쥐>에서보다 많이 달라진 그의 모습에 응원하고 싶은 기분이 많이 들었다.
책 띠지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화되는 <스노우맨>의 주연을 맡을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인물이 해리 홀레 역을 할 예정인 모양이다. 책 출간으로부터 벌써 몇 년이나 지난 터라 많은 것들이 바뀐 모양이다. 내가 너무 늦게 읽은 거다. 진작에 읽었어도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