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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4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5년 12월
평점 :
1호를 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을 때, 2호가 나왔다. 2호를 부랴부랴 읽자 얼마 지나지 않아 3호가 나왔고, 3호를 읽고 나니
4호가 나왔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숙제가 주어지는 듯한 그리 좋지 못한 기분이다. 이래서 내가 꾸준히 무언가를 챙겨 보거나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TV드라마든 내용이 이어지는 웹툰이든 챙겨야 하는 게 있다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실 읽은 시간이나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의
기간을 생각해보면 <미스테리아>는 격월을 열심히 지켰다. 그저 내가 그동안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매번 출간될 때마다 "또 나왔네, 또
나왔어!"할 따름이다. 이번에도 한 달은 빨리 지나갔고 숙제 4호가 다시 서점에 등장했다. 나는 지난 3호를 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나왔다고 구시렁거리며 며칠 전 구입했고 손이 비자마자 집어들었다. 이제 또 금방 5호가 나오고, 나는 또 구시렁대며 구입하고 부지런히 읽고
흡족한 얼굴로 책장을 덮겠지.
P.D. 제임스, 루스 렌들, 헨닝 망켈이라는 1~2년 사이 세상을 떠난 세 명의 미스터리 작가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책에 적힌 대로 정말
'거장'인지는 모르겠다. 요새는 하도 여기저기에 거장이라고 붙여싸서 '뭔 놈의 거장이 이렇게 많냐?' 싶을 때가 많으니. 그런데 두 사람이 여성
작가라는 사실이 시선을 끌었다. 요즘에야 여성 작가들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집필하지만 20세기 초반 같은 여자들에게 열악한 시대에 애거서
크리스티 외에 다른 인물들이 있었을 줄이야! (맙소사! 당연히 있었겠지!) 작년에 읽은 슈테판 볼만의 <여자와 책>에서 이야기한
'여성 작가의 수가 극히 적었을 거라는 잘못된 선입견'에 해당되는 판단이다. 또한 왠지 미스터리 같은 살인이나 죽음 같은 불유쾌한 장르 쪽에는
더더욱 그러리란 선입견도 내 머리 한쪽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코너였다. P.D. 제임스의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와
루스 렌들의 <활자잔혹극>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실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는 <죽음이 펨벌리로 오다>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피에르 르메트르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는 그의 책 <오르부아르>에 호기심이 생겼다. 제목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 데다 프랑스 작가라 어쩐지 베르나르 베르베르 류일 것 같은 선입견(!)이 작용해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요즘 처음 보는
작가가 너무나 많아서 그 역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신인인가 했었는데 벌써 우리나라에 작품도 몇 권이나 번역된 적이 있는 양반이었다. 예전엔
요새처럼 방앗간 문턱 닳도록 서점 사이트를 드나든 게 아니라서 소식에 둔감했던 탓인 모양이다.
아, 이번에도 유성호 법의학자의 실제 사건을 다룬 코너는 흥미로웠다. 최근 뉴스에 자주 오르락거리는 어린이 학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코너는 실제 사건인 탓에 흥미로우면서도 마음이 아픈데, 이번엔 아이들 이야기라 더욱 씁쓸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한두 살짜리 어린애들을 자기들 기분에 따라 때리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일이 줄어들긴커녕 사회안전망이 부실해지면서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어린 아기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자의 끝맺음이 유독 가슴을 저미게 했다.
일본 책인 <밀실입문>을 연재하는 코너는 이것저것 배울 점이 많다. 이번엔 나중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 담을 없애거나 낮게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ㅎㅎㅎ 하지만 어쩐지 갈수록 지루한 느낌이 드는 코너이다. 요즘의 미스터리는 밀실 안에서 벌어진 신묘한 살인보다 살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와 심리를 다루다 보니 밀실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 또한 내가 밀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밀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를 알고 싶은 독자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번 호에 실린 네 단편들 중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단편인 <구부전>과 <원주행>이 마음에 들었다.
<구부전>은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뱀파이어화라는 설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원주행>은 사건을 해결한 인물이 너무나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사실이 꽤나 코믹한 요소로 작용했다. 사실 일어난 사건이나 사건 풀이가 보잘것없어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경찰이 금세 해결했을
테지만, 사건을 해결한 뒤에도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한다며 비밀 유지를 신신당부한 주인공의 모습이 친근했다. 사건 풀이를 했다고 회사에 못 다닐
이유는 없지만서도 살인자들에게 신상이 알려져봤자 좋을 게 없고, 그냥 평범한 1인으로 남고 싶어하는 것 또한 미소를 자아냈다.
한 달 뒤, 다음 5호 숙제는 어떨는지 기다려진다. 그래도 벌써 나왔다며 구시렁대긴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