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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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유정.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게 언제더라. 아마도 이 작품, <7년의 밤>이 출간되었을 무렵일 듯하다. 아니, 그 전에도 이름은 들어본 바가 있으리라. 하지만 그 전에는 별로 신경 쓸 만한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고, 얼핏 들었던 작품 제목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나 <내 심장을 쏴라>는 지금 봐도 그다지 끌리는 제목이 아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칭명사가 들어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호기심이 좀 생겼을 법도 하건만. 그러나 이 <7년의 밤>은 제목부터 단번에 눈길을 잡아끌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7년의 밤 동안 어쨌다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궁금했다. 대충 찾아 읽은 간략 소개에는 7년간의 밤 동안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난 이야기 어쩌고 되어 있었고 그 한 줄로 다시 관심이 식었다. 게다가 내가 선호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작가라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그러다가 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곤 '가볍게' 집어들었다. 어쩐지 중고서점에서는 평소에 장바구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던 책도 보존 상태가 좋으면 집어들게 되는 마력이 있다. 그때, 이 책을 사길 얼마나 잘했던가. 비로소 작가 정유정을 알게 되었으니.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두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신체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삶이라는 전체 틀을 놓고 봤을 때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두 어린이이다. 부모와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랄 열두 살의 나이. 아직 초등학생 딱지도 떼지 못한 나이다. 그런 아이들이 못난 부모들로 인해 사건에 휘말리고,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고통을 받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열두 살 어린 여자아이 세령은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다면 행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심각한 수준의 가정 폭력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두 모녀, 세령과 그 엄마가 받는 학대를 모른 척했다. 아이 엄마라도 조금 더 빨리 정신을 차렸더라면 세령은 악몽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웃으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너무나 뒤늦게 삶을 찾아나섰고 너무나 뒤늦게 아이를 찾으려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제 아빠를 악마처럼 무서워하며 하루하루 얇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지냈을 아이, 진심으로 밝게 웃어본 기억이 없었을 아이. 마치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인 것처럼 벌을 받던 아이. 현실에서도 없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가정 폭력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하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내 딸, 여기 있었구나." 예상대로 기척이 없었다. "겁나서 거기 숨은 거라면 이제 나와도 좋아. 반성하면, 더 혼내지 않을 테니까." 그는 죽을힘을 다해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오늘 아빠한테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 있었거든."

축축한 바람이 호수 쪽에서 올라왔다. 가시박덩굴이 잎을 들썩이며 쏴, 소리를 냈다. 그는 다리를 벌리고 철망담장에 붙어 섰다. 랜턴을 서치라이트처럼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무것도 제자리에 있지 않았어. 아빠는 쉬고 싶었는데……"

영제는 입을 다물었다. 말하다 보니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쥐방울만 한 계집애 때문에 피곤한 몸을 끌고 안개 속을 헤매다가, 이제는 빗속에 선 채 우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니. 다시 입을 열자, 하고 싶은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빡 돌게 했잖아. 이 개 같은 년아!" (p. 110)



또 살인범의 아들로 낙인이 찍혀 삶이 망가져 버린 서원은 또 어떠한가. 또랑또랑하고 명민하던 아이는 제 아빠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인간의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고 만다. 살인자. 분명히 벌을 받아야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법적인 벌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짓에 상응하는 신체·물리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살인자의 자식이 단지 죄 지은 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아무 죄도 없는데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단연코 'NO'를 외쳐야 한다. 물론 아이를 보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의 부모가 저지른 짓이 떠오를 테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보호되어야 하고, 특히나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지켜져야 한다. 분명히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연좌제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건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좌제가 시행된다. 잊힐 만하면 언론─오영제의 짓일 거라고 생각하지만─에서는 서원의 괴로운 과거를 끄집어내어 도마 위에 올린다. 친척들에게서조차 버려진 서원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 궁벽한 어촌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처지가 된다. 사회는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받는 대우들로 나쁜 길로 들어설 환경을 애써 조성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러면서 사회의 비난과 압박에 못이겨 죄를 저지르면 핏줄이 어쩌고 떠드는 논리다.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 출소에 맞춰 선데이매거진이 집주인에게 배달됐다. 이번에는 내가 주인공 노릇을 한 4주 전 기사까지 추가됐다. 주인은 방을 빼라고 요구해왔다. 학교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전학과 자퇴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열두 번의 전학 끝에 자퇴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 네 학기 동안엔 아홉 번 전학을 했다. 신분이 알려지는 방식은 늘 같았다. 선데이매거진과 나에 관한 기사의 복사본이 학교와 학부모회와 반 아이들, 집주인과 이웃집으로 동시 배포됐다. (p. 27)



서원이 맞이한 고통스런 삶에 대해선 그의 아빠인 최현수가 가장 책임이 크다. 범죄를 저지른 데다 그 이전엔 날마다 술을 퍼먹고 음주운전을 해댄 것이다. 본인이 꿈꾸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삶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막 살아가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세령의 아빠 오영제가 끔찍했다면 서원의 아빠 최현수는 꼴불견이었다. 그가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망가진 몸을 이끌고 온 천하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어른들은 누구 하나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그나마 갈 곳 없는 서원을 보살펴주는 승환이 가장 낫지만, 그 역시 세령이 제 아빠에게 당하는 일을 알면서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7년간의 인생 또한 엉킬 대로 엉켜 버리게 된 셈이다.


이 멋진 소설에도 약간의 의문은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도덕 의식이 뛰어나지는 못하다고 해도 모든 진실을 감출 수 있을 만큼 메말라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70~80년대도 아닌 200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방 유지의 권력이 두려워 진실을 은폐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진실은 숫자나 문서에 관련된 것도 아닌 한 인간의, 게다가 어린 여자아이의 목숨이다. 많이 부패해 있고 날마다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사회이긴 하지만 여전히 올바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글쎄, 등장인물들은 그 사실을 너무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7년의 밤>은 아주 잘 짜여진 스토리의 스릴러 소설이다. 읽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밥 먹는 동안 잠깐만 읽어야지 하면서 읽기 시작하다가 끝내버리고 말았더랬다. 읽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단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지루하거나 막히는 부분이 없다. 누군가 최근 읽은 한국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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