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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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더링’은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기의 소요에 그대로 노출됨을 이르는 말”(p.11)이라고 한다. 그러니 ‘워더링 하이츠’는 높은 언덕에 있어서 폭풍우가 오면 영향을 강하게 받는 집이라는 뜻이 된다. 국내에서 이 작품은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역자는 해설에서 ‘워더링 하이츠’를 ‘폭풍의 언덕’이라고 하는 것은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이라고 해야 하며, ‘워더링 하이츠’ 자체가 소설에서 고유 명사로 기능하므로 작품 제목을 한국어로 바꾸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워더링 하이츠』는 워더링 하이츠라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언덕 위에 있는 워더링 하이츠와 언덕 아래에 있는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집 두 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언쇼 가와 린턴 가 두 집안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이자, 이 두 집안을 향한 한 남자의 복수극이다. 복수극을 벌인 그의 이름은 히스클리프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집에서 자라면서 서로 유대감을 느끼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신분 차이로 인해 캐서린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가 시작된다.

화자는 히스클리프를 악마처럼 묘사한다. 그가 원래 악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일까, 성장 배경이 그를 악인으로 만든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읽는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리학에서,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좋은 어른들 곁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면 범죄자가 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또 아이를 학대하는 보호자는 어렸을 때 학대당한 아이였을 공산이 크다고도 한다.

히스클리프는 사랑과 학대와 차별을 모두 경험했다. 히스클리프는 지칠 줄 모르는 순전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기 이익을 최대화할 줄 아는 계산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학대와 차별이 그에게 남긴 상처가 사랑마저 비뚤어지게 하고 그를 완전한 악인으로 몰아세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이자 요절한 캐서린 언쇼는 소녀 유령이 되어 워더링 하이츠에 나타난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세입자 록우드는 집주인 히스클리프에게 인사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에 방문했다가 폭설로 인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소녀 유령을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폭풍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스스로 폭풍을 만들어내어 모두를 폭풍 속으로 집어넣어 흔들었다. 어쩌면 폭풍은 원래 그곳에 계속 존재해 왔는지도 모른다. 원래 보이지 않던 것을 히스클리프가 밖으로 끄집어내어 모두에게 펼쳐 보여 줬을 뿐일지도.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의 슬픔은 슬퍼하기를 거부하는 그런 종류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는 울지 않았고 기도 드리지도 않는 대신 저주하고 저항했어요. 하느님이고 인간이고 몽땅 증오하면서 자신을 마구잡이로 방탕에 내던졌답니다. - P104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넬리,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걔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 P129

내가 이 세상에서 맛본 크나큰 고통들은 모두 히스클리프가 당한 고통이었어. 처음부터 그 고통 하나하나를 지켜봤고 겪어 냈지. 살아오는 동안 내 생각의 가장 큰 몫이 바로 히스클리프였어. 모든 것이 소멸해도 그가 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해.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있되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되고 말 거야. 내가 그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거야. - P131

인간은 결국에 가서는 자기 본위가 되는 건가 봅니다. 유순하고 관대한 사람들의 이기심이 자기 맘대로 쥐고 흔들려는 사람들의 이기심보다 조금 더 정당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상대방이 내 이해를 주된 관심사로 삼지 않는다고 서로 느끼게 됐을 때 행복한 결혼의 막은 내린 겁니다. - P147

‘내’ 히스클리프는 저렇지 않아. 나는 내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거고, 저승까지라도 데리고 갈 거야. 그는 내 영혼 안에 있으니까. - P256

당신이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든다 해도 당신의 그 잔인함이 더 큰 비참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복수가 돼요. 당신은 비참해요. -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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