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는 미래 - 사라진 북극, 기상전문기자의 지구 최북단 취재기
신방실 지음 / 문학수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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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또다시 북극이다. 작년에 극지연구소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자료를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상하게 극지 이야기는 질리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만은 않다. 극지를 들여다볼수록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의 환경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계속 살아가지 않고 무언가를 바꾸고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서 내 생활 방식도 주기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튼, 결국 나는 극지연구소 연구원분의 추천사를 보고 이건 꼭 읽어야 한다며 홀린 듯 서평단을 신청했다.

『되돌릴 수 없는 미래』는 작년에 방영한 KBS 《시사기획 창》의 〈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 프로그램 제작기, 즉 기자의 북극 취재기다. 북극으로 출발하는 여정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상전문기자의 눈으로 본 북극의 변화와 취재 뒷이야기를 들려준 뒤, 다큐멘터리 편집 과정과 기상전문기자의 일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방송에는 분량상 넣지 못한 인터뷰도 중간중간에 실려 있다. (다큐멘터리 풀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제목을 짓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북극은 우리 몸으로 얘기하면 심장하고 같은 역할”이라는 남승일 박사님의 인터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기후위기의 핵심이 북극에 있다는 것이다. 북극은 현재 지구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기온이 더 많이 올라 빙하도 급속도로 녹고 있다. 하얀 빙하는 햇빛을 반사하는 역할도 하므로 빙하가 사라지면 기온 상승 속도도 가속화된다. 악순환이다. 심지어 빙하가 녹으면서 퇴적물이 피오르에 쌓여 갯벌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인간이 배출한 미세플라스틱은 지구를 돌고 돌아 극지에까지 다다랐다. 노아의 방주에 비유되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보관소 입구가 눈이 녹아서 침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북극에 모기도 등장했다. 또한 해빙에서 물범을 사냥하던 북극곰이 육지에서 바닷새의 알을 훔쳐 먹거나 순록을 잡아먹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환경이 변하면서 서식지도 이동하고 있다. 인간으로 인해 비인간 동물도 피해를 보는 것이다.

작년에 자료 조사를 하다가 극지연구소는 대체 뭐 하는 데냐, 세금이 아깝다는 누군가의 항의성 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저자도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북극은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폭염과 한파, 초강력 태풍까지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북극이 보내는 경고다. 그래서 누군가는 북극을 연구해야 하고, 누군가는 취재해야 하며,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바렌츠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북극의 해빙은 이제 여름이 되기도 전에 대부분 녹아버린다. 쇄빙선 없이도 북극 탐험이 가능해지는 미래는 축복이 아니라 비극이다.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해빙이 없는 북극의 여름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P52

실제로 북극을 오가는 과학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북극의 빙하를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이 늘고 빙하와 영구동토층, 생태계에 영향을 줄 테니 말이다. 관광객이 늘어날수록 주민들은 돈을 벌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북극이 정체성을 잃고 결국 북극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지 모른다. - P57

산이 있으니 당연히 눈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북극에서 어떤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기온이 상승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눈이 쌓이는 각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체감하기 힘든 사소한 변화, 예를 들면 어느 시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왔는데 갑자기 남쪽에서 불어온다거나 하는 현상이 눈사태 같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죠. - P78

역설적으로 빙하 주변 바다는 온통 시뻘건 흙빛이었다. 산 정상의 빙하가 후퇴하면서 쓸고 온 흙과 모래 때문이다. 콸콸 솟구치는 흙탕물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자갈과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섬이 하나 생겨날지도 모른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안가의 지형을 통째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 P88

북극의 변화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라는 가속도를 더하며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북극의 온도 상승이 해빙을 더 많이 녹이고, 해빙이 사라진 검은 바다는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더 많은 해빙을 녹인다. 플러스(+)가 플러스(+)를 불러오는 공포의 양의 되먹임 현상으로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것이다. 북극의 기후변화는 전 세계 나머지 지역보다 2~3배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이라고 부른다. - P111

우리의 삶은 북극과 연결돼 있다. 수천 km 떨어진 곳의 기후가 서로 영향을 주는 현상을 기상학 용어로 ‘원격 상관teleconnection’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대기권과 수권, 지권, 빙권, 생물권으로 연결돼 있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마주치게 된다. 이런 걸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 내가 마시는 물 한 잔은 아주 오래전 지구 반대편에서 증발한 호수일지도 모른다. 지구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상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 P115

남극과 북극으로 향하는 여행객 수에 비례해 유람선 운항도 증가했고 빙산과 충돌하는 등 아찔한 사고도 끊이질 않았다. 비행기와 보트, 차량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빙하의 수명을 단축하고 있다는 진실은 뒷전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빙하를 나만 보겠다는 이기심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여행객들을 위해 만든 도로 덕분에 편의성과 접근성이 좋아진 만큼 운명의 날doomsday로 향하는 속도 역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빨라지고 있다. - P126

일방적으로 육식 대신 채식을 하라고 요구할 수 없으므로 음식을 기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대중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선 2014년부터 ‘기후 미식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기후 미식가가 되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육식주의자도, 채식주의자도 아닌 기후 미식가라니 좋지 아니한가. - P226

기상청도 학계, 언론, 시민과 함께 한국형 우기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현실판 장마는 더 이상 소설 속 장마가 아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는 전통적인 장마와 작별하고 새로운 우기에 적응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됐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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