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정말 끝내주는데 에이플랫 시리즈 12
심완선 지음 / 에이플랫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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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팬이라면 무조건 소장 추천.


그리고, 읽으면서 북 칼럼니스트와 북 리뷰어의 차이는 이런거구나 - 라는 걸 깨달았다.

와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지? 


처음에는 SF 칼럼니스트라니,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쪽 분야의 직업군이 있는 줄도 몰랐다. 뭐랄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쓰는 "에세이스트"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낯선 느낌을 가득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 게다가 나처럼 SF 장르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저자가 여자인 것도 신기해서, 즐거운 동지 의식(?)까지 가지고 읽었는데 와아. 여자 남자를 떠나서 그냥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보도 재미도 생각거리도 가득한 글들이 넘친다. 



이렇게 끝내주게 좋은 책에도 

독자로서 읽을 때 세 가지 작은 단점이 느껴졌는데 

하나는 작가의 글을 더 찾아 읽을 수 있는 웹사이트나 기타 방법이 책에 게재되어 있지 않다는 점. 


요즘 나오는 책들은 책머리 작가 소개에 작가 정보나 작품들을 열람할 수 있는, 혹은 연락할 수 있는 웹사이트, 블로그, 인스타그램, (그리고 때로는 놀랍게도) 이메일 정보까지 올리던데, 이 책에는 그런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작가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 버튼을 눌렀는데 - 내 능력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이동진 평론가처럼 작가가 주로 활동하는 블로그같은 주 활동 미디어는 찾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작은 단점은 목차.


글 하나하나는 모두 매우 뛰어난데, 처음 그냥 목차만 봤을 때는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 무엇보다 소제목들이 일관성이 없어 보였고 대제목과 소제목의 연결고리도 적어 보였다. 


왜 그렇게 읽혀지나 나중에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이 책은 국내외 SF 작품들을(영화나 드라마도 다루지만 일단 95%는 소설을 다룬다) 기반으로 특정 주제를 통찰력으로 쓴 글들의 모음인데, 그 제목들을 변경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와서 사용해서 이런 혼란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어떤 글에는 인용되는 SF 작품이 하나나 둘이어서 그대로 소제목에 반영되는데, 어떤 칼럼은 인용되는 책이 많게는 6, 7권이나 되다보니 모두 소제목에 넣기 어려워서 - 그런 작은 차이도 보였던 것 같고.



세번째 작은 단점은 - 문인 지하련에 대한 칼럼. 


좋은 글이고 생각거리도 많은 칼럼임은 분명하지만, 이 책은 SF 작품에 대한 책이고 문인 지하련 글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인 "균열을 찾는 여자들"에 속한 칼럼인데 - 그 "균열을 찾는 여자들"이란 제목의 뜻은 SF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여자인 경우, 혹은 SF 작들의 저자가 여자인 경우에만 한정에서 쓴 글들의 모음으로 생각되었는데, 문인 지하련 칼럼은 여기에 어울린다고 보이지 않았다. 비록 우리나라 여성 작가이자 "최초로 지식인의 양심 가책"을 다룬 소설을 썼고 그 힘든 일제시대 때 한글로만 책을 쓰는 고집을 가지고 있었던 여자 작가이다 할지라도, SF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그다지 어울리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흥미로웠던 글들이 가득했다. 


레퍼런스로 인용된 작품들도 모두 다 찾아 읽고 싶다. 르귄의 <어둠의 왼손>, 세라 워터스의 <끌림>, 윌리스의 <둠즈데이북>, 셜리 잭슨의 <힐 하우스의 유령>, 패러츠키의 <제한 보상>, 찰스 유의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율리 체의 <어떤 소송>, 이르지 쿨하네크로의 <피의 길>,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 등등. 한국 작품으로는 양원영의 <신의 별>과 김보영의 <7인의 집행관>이 가장 읽고 싶다.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을 (더) 좋아하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를 5번 이상 읽은 SF 광팬이자 테드 창을 열렬히 응원하는 SF 팬으로서, 의외로 내가 접한 SF 작품과 지식이 얕다는 사실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내가 읽은 SF 작품들은 대부분 21세기에 가까운 20세기의 작품들이었고,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 SF 작품은 단 한권도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도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반성, 또 반성.


모든 글들이 좋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체코 SF에 대한 글이었다.


SF라는 장르가 

"단순히" 세계 기술의 발전과 사회 관계에 대한 장르뿐만 아니라,

테드 창이 말했던 것처럼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세계를 바꾸는" 장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체코라는 나라에서는 SF가 자국의 역사와 함께 한 저항이자 민주주의 상징의 일환이 된 장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나는 체코에서 SF가 그렇게 발전했는지도 몰랐고,

'로봇'이란 단어가 체코어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몰랐고,

'로봇'이란 단어를 처음 쓴 작가 카렐 체코프가 체코 작가였는지도 몰랐고,

그러고 보니 체코라는 나라에 대해 지식이 전무하다는 걸 알았다.

("로봇 robot은 '노예, '고된 일'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 robota'에서 온 말이다)

SF가 체코에서 메이저 장르 - 그러니까 성공적인 장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이유가 체코의 저항 역사와 관련있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체코는 '중부 유럽'(동유럽이 아니라!!!!)에 속한 나라인데, 

우리나라처럼 주변국들에게 시달리면서 살다가 독립한 것이 1918년이다.


그러나 독립 후 딱 30년이 지난 1938년에 뮌헨 협정으로 인해 곧바로 "나치에 희생양으로 던져졌"고,

독일이 패배한 1945년에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 언론, 출판 등 국민의 모든 자유를 뺏긴다.


그 후 소련이 붕괴된 1991년까지 체코에서 "공산주의 내에서의 민주화 개혁 운동"이 계속 되지만 소련국들에 의해 성공하지는 못했다. 체코가 진정으로 독립한 해는 소련 붕괴 1년 후인 1992년, 체코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채택할 것을 공식 선언"하고 1993년이 되어서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한 때였다.


그러니까 체코는 1993년생이다. 


이런 체코의 구구절절한 역사 속에서 SF 장르는 소련하에서 모든 것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었던 시절,

SF는 "문학적으로 꽉 졸려 있던 사람들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시리즈 중 12번째 책이던데, 다른 책도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


SF 장르를 좋아한다면,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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