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 -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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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레이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가 떠올랐다. 


그 영화의 결말에 대해 저렇게 개고생해서 우주 끝까지 다녀왔는데 겨우 한다는게 지 마누라한테 돌아간다는 거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두 번째 산은 커녕 첫 번째 산도 제대로 올라갈 생각도, 시도도 안해본 사람이 아닐까. 삶에 대한 통찰력이 그 사람처럼 전무한 사람에게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주의를 지향하는 이 책은 과연 어떻게 읽혀질까. 


좋았다.


인생에 대해서, 삶 전반에 대해서 - "잘 살기 위해" 사람이 헌신하는 4가지 목록 - 직업, 결혼, 철학/신앙, 공동체 - 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나누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고 저자 본인의 이야기도(특히 철학/신앙 부분에서, 본인은 종교적이지 않은 유대인인데 삶의 지대한 흔들림을 가져왔던 첫 번째 이혼 이후, "두번째 산"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철학과 신앙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많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는 600페이지에 가까워 놀라기도 하고 살짝 겁도 났는데, 읽기 시작하니 수루루룩. 



생각거리들에 대해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붙이다보니 어느새 저렇게 많이. 

다 읽고 나서는 서평을 어찌 써야 하는지 조금 난감했다. 

...포스트잇이 너무 많잖아;

한가지 의아(?)했던 점이라면 '행복'과 '기쁨'에 대한 차이점을 말하는 p36, p37. 번역가는 여기서 'happiness'를 '행복'으로, 'joy'를 '기쁨'으로 번역했는데, 나라면 그 반대로 번역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감정이 '기쁨'보다 한단계 더 높은 감정 단계로 느껴지는 데다가 - 그러니까 1차원적인, 순간적인 쾌락 단계에 더 가까운 건 '기쁨'인 것 같아서 - 저자는 왜 단순한 happiness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닌 깊이 있는 joy에 삶을 두고 생각하는지를 서문에 말하고 있어서 그냥 개인적으로, 단어 번역이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부인처럼 두 번째 산이 먼저 왔다가 반대로 첫 번째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첫 번째 산에 올라가는 삶을 살다가 (그리고 다 올라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어떤 큰 고통을 마주하며 인생관이 완벽하게 달라져서

두 번째 산을 올라가는 삶을,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과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과거와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산이 개인주의에 중점으로 사는 삶, 특히 "심미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이것저것 건드리기만 하고"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남들이 보기에는 매우 부지런하고 쾌활하고 여기저기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고 똑똑하고 사교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불법적인 것만 없을 뿐이지, 결국 이 사람들도 매번 순간적인 쾌락을 쫓고 사는 인생을 살았던 것 뿐이다 - 라는 저자의 글에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두 번째 산을 살기 위해

4가지 헌신 분야가 있다. 

직업, 결혼, 철학/신앙, 공동체.

두 번째 산을 살기 위한 첫 번째 헌신 분야, 직업.

직업을 소명 의식을 갖고 선택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도 많이 봤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소명 의식조차 처음에는 "심미적인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점차 "인생이 나에게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로 이어져, 점점 자신의 개인적 욕망 (돈, 매력, 권력 등)에서 사회와 공동체로 옮겨간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 본 질문은 "나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였다. 몇 년전에 몸이 망가지고 나서 저런 똑같은 질문을 나자신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답이 내가 일했던 곳이 아니여서 놀랐던 적이 있다. 나는 내가 그 곳에서 일하는 게 나에게 매우 중요하고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었고, 그리고 그걸 이루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몸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더 놀라웠던 건 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 직업이 나오지 않았을 때, 내가 여태까지 삶의 방향을 잘못 잡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 결혼. 

결혼을 "두 사람이 함께 수행하는 희망의 혁명"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결혼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해야할 질문들과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야 할 질문들을 보고, 역시 결혼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사회 집단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세 번째, 철학과 신앙.

여기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본인은 굉장히 비종교적인 유대인인데, 반대로 교회를 다니고 결국 자신과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한 두번째 아내의 영향과 지지로 꼭 "종교적"인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삶에 대해 스스로 세웠던 철학과 신앙에 대한 사고방식이 많이 변했음을 세세하게 고백한다.

"많은 사람들은 서양 문명사나 그런 종류의 고전 교육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이미 죽고 없는 엘리트주의적 관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양 문명은 예나 지금이나 급진주의, 즉 현재의 상태와 행복하게 공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반문화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사고 방식으로 종교를 - 매우 비종교적인 유대교인 입장에서 - 주욱 나열해서 이야기하는데, 확실히 나처럼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많이 했는지 공감도 가고 이해도 가는 부분이 많았다. ..."종교적인" 사람들을 어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인이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짜 신의 아들이든 아니든간에 자신을 모욕하고 괴롭히고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한 사람아닌가. 이렇게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어딨어. ...그래서 나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욕하고 개종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하는 건 진정한 예수 정신이자 교회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과 신앙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비종교적이자 무종교적인 저자가 "신앙으로 도약하기"에 대한 계기를 이야기하는데 - 지하철에서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소중해 보이는 - 이런 경험은 꼭 저자가 말하는 종교나 신앙 중심이 아니라 자신이 삶에 바라보는 인생관, 철학이 바뀌는 절제절묘한 순간을 경험했다고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싫고, 피하고 싶고, 무섭고, 괴롭고, 그러다가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

저자는 이런 경험이 아주 큰 고통에서, 이제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마지막, 공동체. 

앞서 말했던 3가지 헌신 분야와 조금 겹치기도 하는데 중요점은,

자기 자신만의 이득을 생각하는 삶에서 사회와 삶을 생각하는 인생, 자신의 언행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지하고 그것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사는, 그리고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책에서 이런 말은 없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굉장히 하찮게 여긴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고 항상 대출빚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고, 손님에게 뿐만 아니라 그냥 막 신경질 내는 사람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돈 계산할 때 한번 만나는 짧은 순간에도 굉장히 호감가고 인상 깊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차이가 뭘까 오랜 시간 고민을 했었는데, 그게 그 사람들의 예쁘고 잘생겼나 아니나 하는 외모보다는, 무언가 자신들의 직업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 자세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본인이 공동체에 이득이 되는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소명"에서 - "두 번째 산"에서 - 나오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달았다. 

결국 이 책은

인생의 두 번째 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개인주의에서 관계주의"로 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서평을 쓰는 게 어려웠다.

처음에는 나도 저자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결국 다 지우고 다시 썼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이상기묘하게 줄어들었다. 

음... 어떤 사람들은 읽으면서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이렇게 살면 돈 많이 번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공허함, 두려움, 허무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면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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