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소설 제목이 ‘귤’인줄 알았다. 탄제린이라고 해서.

스릴러라면서 한국말로 제목이 <귤>, 이렇게 하면 어딘가 민망(?)해서 그냥 영어 제목으로 <탄제린>이라고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탄제린은 귤과 동음이인어라는 걸 알았다. 모로코의 도시 탕헤르, 그리고 그 도시에 사는 외국 사람들을 현지인들이 탄제린이라고 부른단다.

이 책은 1956년 모로코의 도시 탕헤르에서 대학교 동창이자 룸메이트였던 영국 여자 앨리스와 미국 여자 루시의 무서운 우정 - 만 18세에 시작되어 21살 탕헤르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의 격정 가득한 - 인간 관계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 소설같다고 책 띠지와 홍보문에 적혀 있길래 기대를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머리채를 질질질 끌고 가는 <나를 찾아줘>와는 달리 소설 도입부의 1/10 정도는 의도적인 집중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술술술.

한 때는 가족 이상의 우정이었지만 이제는 떼어버리고 싶은 과거이자 거부하고 싶은 옛 우정을 잘 묘사했고,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앨리스의 심리에 실화를 다루었던 영화 <엔젤 오브 마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 사진의 여인이 앨리스일까 루시일까 고민했는데, 결국 옷 차림새 묘사를 봐서는 루시일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중간에 잠깐 루시 옷을 입은 앨리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저 여자는 루시같은 붉은 머리를 가졌을 것 같아서.



이 책이 작가의 첫 소설인데, 출판되기 전부터 조지 클루니에게 판권이 팔려 조만간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는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스칼렛 요한슨이 맡을 배역이 누가 될까 상상하면서 읽었다. 스칼렛 요한슨은 대본 선택에 실패가 없는 배우이기도 하고 여리여리 연약 소녀 역할도 액션 배우도, 엄마 역할도 무서운 역할도 모두 다 어울리는 전무후무한 배우라 앨리스든 루시든 다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마성의(?) 루시 역을 해주었으면 했다. 앨리스는... 글쎄. 에이미 아담스?

영화가 시나리오를 어떻게 만들어지냐에 따라 흔한 반전 스릴러가 되든지 영화 <나를 찾아줘>처럼 무섭고 오싹한 작품이 될 것 같다.



(…) 나는 도저히 그 골칫거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영국에 돌아온 지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이고 존을 알게 된 시간은 그보다 더 짧았지만,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고 확신했다. 그의 흥분, 그의 에너지가 우리 주위의 공간을 체우고 더운 여름 공기를 가르며 솟구치는 것을. 나는 그것을 붙잡고, 움켜쥐고, 그 중 일부는 나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에 적극적으로 달려 들었고, 그 발상이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게 했다.


존 메켈리스터는 내가 꿈꿔왔던 이상형은 분명 아니었지만 - 그는 시끄럽고 사교적이고 자신만만했으며 종종 무모했다 - 나는 그가 제시한 기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다 잊을 기회, 지난 일은 묻어 두고 돌아설 기회.

앨리스에 대한 설명은 저 문장으로 가능할 것 같다.

어떤 사건으로 계속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결국 원치 않은 관계와, 비틀려진 인간관계가 구원이라 생각해 붙잡다가 결국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의 이야기.



루시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루시 메이슨은 자신의 유용성에 비해 오래 살았다.

사실 처음부터 딱히 쓸모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나는 환멸과 함께 깨달았다.

그녀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자식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열 살 이후 그녀의 생존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녀는 생존의 방법을 찾았다.

정비소에서 아버지와 다른 남자들과 지내면서,

책을 한 권씩 읽었고, 읽고 쓰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으며,

보다 많은 것, 보다 나은 것을 약속하는 장학금을 받았다.

(...)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죽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루시 욕을 못 하겠더라.



책을 다 읽고 나면 분명, 루시같은 사람은 피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존같은 사람도. 유세프(혹은 조세프)같은 사람도. 사실 모로코의 독립 상황으로 인한 혼란은 나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 혼란으로 득을 본 사람은 루시니까 분명 작품 상 의미는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은 1956년 이야기니 책에 나오는 일말의 사건들이 앨리스의 불행으로 이어질 정도로 가능하다는 건 잘 알겠지만, 그냥 21세기로 배경을 바꾸어도 충분히 스릴 넘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오싹하고 갑갑하고 무서운 스릴러들을 읽을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뿐인 것 같다. 외롭다고 아무 우정, 아무 사랑이나 덥석 물다가는 - 사랑이 고프다고 사람한테 의존하다가는, 결국 늘 불행한 현재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불쌍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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