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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 ㅣ 푸릇푸릇 문학 1
요릭 홀데베이크 지음, 최진영 옮김 / 시금치 / 2024년 11월
평점 :
아침 출근길에 개그맨 김영철씨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는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알려주는 코너, K팝을 알려주는 코너 등등 다 재미있지만 특히 문학강사 김젬마 선생님이 들려주는 문학 이야기가 나는 제일 좋다.
오늘은 좋은 영화 대사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 속 남자주인공 정원이 시한부를 선고받고 삶에 대해,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다가 또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고, 김영철씨가 자주 성대모사하는 하춘화씨의 "세월이 야속해~"하는 그 유명한 말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11월 말, 이제 이틀만 지나면 12월이다. 어린시절, 혹은 젊었던 시절에는 시간이 가서 내가 멋진 어른이 될거고,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건 설레고 뭔가 잡힐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겨울이어서 드는 쓸쓸함보다는 다가올 봄에 대한 설렘이 더 컸던 것이다. 지금은 솔직히,'또 한 살 더 먹었구나, 한 일도 없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즐거운 만남을 갖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다. 직장을 다니고, 엄마노릇과 주부노릇을 하고, 짬을 내서 삐그덕거리는 몸을 위해 병원을 다니다보면 1년이 금방 간다.
카토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가 딸과의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고 정말 허접한 TV프로그램이나 보고 앉아있거나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그는 어른이라서 많이 낡았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큰 상처와 힘듦을 겪어왔기 때문인것이다.
카토는 블랙커피를 즐겨 마시고,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한 아이가 놀린다고 생각하며 주먹으로 코를 날려버리는 어쨌든 패기가 있는 10대 초반 소녀이지만!
카토가 카노 부인의 영화관에 방문하게 된 것도 흥미진진하다. 그 낡고 삐그덕거리는 영화관을 상상하고, 먼지가 가득한그 공간에서 언제 생산되었을지 모를 블랙커피를 타는 그 모습까지 완벽하다. 그럼 나도 요즘의 멀티상영관이 생기기전, 영화포스터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 광고하던 그 시절의 극장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같이 좌석번호가 없고, 또 영화가 인기라면 계단 사이사이 플라스틱의자를 가져다 놓고 영화관람을 시키던 그 시절말이다.
카토가 떠나간 엄마를 그리워하고, 허깨비처럼 앉아있는 아빠를 원망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다른 나라의 이제는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어른도 같이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블랙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쓰디쓴! 그렇지만 위가 쓰라리고, 이석증도 있는 나로서는 카페인을 많이 마시면 좋지 않으니까 따뜻한 오트밀두유를 넣은 부드러운 라떼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세월의 야속함은 비단 나만 느끼는 건 아닐테다. 지금 청춘을 즐기는 다른 이들도 분명 살다보면 내 삶이 더이상 봄과 여름이 아닌, 어느새 11월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불현듯 세월이 야속하다 못해 두렵다고 느낄테지.
그럴땐, 카토의 시간여행을 함께 동행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직 그대로구나, 또 어른인 나는 카토보다도 카토 아빠를 더 안쓰러워하며 또 이렇게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면 된다.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어른들이 읽는다면 더더욱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