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는 바로 그런 유목적 텍스트다. 그것은 여행의 기록이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찐한' 접속이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견의 현장이며,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다. 게다가 그것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다채로움은 또 어떤가. 때론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가 하면, 때론 장중하고, 또 때론 한없이 애수에 젖어들게 하는, 말하자면 멜로디의 수많은 변주가 일어나는 텍스트. 그것이 『열하일기』다.
문풍을 타락시킨 '원흉'으로 『열하일기』를 지목한 정조의 안목은 과연 적확한 것이었다. 그러나 『열하일기』가 일으킨 파장의 측면에서 본다면, 정조의 그 같은 조처는 '뒷북'치는 감 또한 없지 않으니, 앞에서 이미 짚었듯이 이 텍스트는 이미 10여 년에 걸쳐 열렬한 찬사와 저주어린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풍문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문체반정은 이 풍문의 정점이자 공식적 확인절차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