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게걸음으로 가다
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0.구스틀로프호 사건 최악의 해양사고라 하면 타이타닉의 두동강난 모습이 떠오른다. 근데 더 끔찍한 참사가 - 그것도 천재가 아닌 인재로 인한 -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전시에 발생한 일일뿐더러 그 배가 나치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만들어진 배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조차 침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공론화 할 경우에는 극우파가 성장할 빌미를 줄까봐 당국에서조차 얘기를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1.일상으로(1)이 금기시된 이야기는 어느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열렬한 스탈린주의자이면서도 KDF라는 이름하에 구스틀로프호가 수행한 사업이 나치의 정치적 선전도구임을 알지 못하고 그 일에 대해서 열광하는 동독에 살았던 어머니, 한평생 어머니로부터 구스틀로프호에 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급기야 어머니로부터 감추어진 사실을 밝히라는 임무까지 받게된 아들과 그리고 좌익 성향의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온라인상에서 극우파로 활동하여 끝내는 살인을 저지른 손자로 구성된 3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것은 추상적으로 나타난 '나치즘의 잔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일상생활에서 갖고 있는 '잔재'를 끄집어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2.일상으로(2) 이 이야기는 50년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하지만 다시 과거는 구스틀로프라는 나치당원과 그를 죽인 프랑크푸르터, 후에 구스틀로프호를 격침시킨 소련 장교 마리네스크,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 건조된 구스틀로프호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현재 역시 화자가 살고 있는 오프라인의 현재와 그가 어머니와 '그 남자' - 즉 귄터 그라스 자신 - 의 채근으로 하고 있는 조사를 통해 알게된 '구스틀로프 동지회'라는 온라인 극우단체로 나뉘어져서 '따로 또 같이' 서술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는 구스틀로프호의 건조와 격침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로 합쳐지고, 현재는 '구스틀로프 동지회'에서 활약하던 인물이 주인공의 아들임이 밝혀지면서 합쳐지게 된다. 즉 자기 자신이 침몰해가던 구스틀로프호에서 구출된 어미니가 옮겨진 잠수함 선내에서 자기를 낳았다는 점 외에는 구스틀로프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가 조사과정 중에서 아들이 극우파 활동 - 특히 구스틀로프호와 연관되어 -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가 급기야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들은 빠르게 내면화되어간다. 나치즘이 일부만의, 또 '잘못된 것'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라는 점이 다시한번 드러난다.

3.다시 일상으로, 하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야기는 그동안 소원하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부자관계가 회복되고, 소년원에서 복무중이던 아들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보관중이던 구스틀로프호 모형을 '부수는'것을 통해 그가 '과거'를 '청산'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일상'적인 것으로 돌아가게 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게걸음으로 앞으로 달려온' 그 남자 - 귄터 그라스 자신 -을 통해 그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명명된 '콘라트 포크리프케 동지회'라는 극우단체가 예전에 그의 아들이 활동했던 '구스틀로프 동지회' 못지않게 번창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아직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어쩌면 절대로 허용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중간중간에 그의 어머니 못지 않게 그를 채근했던 '그 남자'는 그를 재촉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재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