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자유주의의 실험
민두기 지음 / 지식산업사 / 1997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중국 국민혁명기에서 장개석이 대만으로 옮긴 후 60년대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던 호적의 행적에 대한 것이다. 미국 유학시절 듀이로부터 사사받은 그는 자유주의의 원칙을 바탕으로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끊임없이 했었다.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란 타인에 대한 용인 - 즉 관용 - 으로써 보장된 개인의 가치의 유지 발전을 사회적 정치적 진본의 근본목표로 삼고, 자유를 정치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다원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독재적인 방법이 아닌 민주주의적 법치의 방법으로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자유주의자로 활동하는 동안 내내 공산당과 국민당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그의 주장은 그의 생전동안은 '실험'으로 그쳤었다. 그의 사상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그의 사후에서부터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와 같은 관용과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호적의 사상과 이에 충실하였던, 지행일치적인 그의 활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지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대에서는 불행히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는 국민당으로부터는 친공적이라 비판을 받았고 공산당으로부터는 미제국주의의 주구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사회의 개혁을 위한 두가지의 정반대 길을 택해야 했던 시절에 그는 세 번째 길을 걷고자 하였기에 - 부득이하게 장개석의 편에 서있지만, 그는 언론활동을 통해 꾸준히 장개석에게 충과와 비판을 했었다 - 그것도 국민당과 공산당과 같이 갑작스런 혁명을 통한 사회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개혁을 통한 사회변화를 추구했기에, 양쪽에 비해 호응을 덜 받고, 또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것이었다. 그는 순수한 자유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정치 일선에서는 가급적 물러나고자 했었다. 역사에서 가정을 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에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만약 호적이 -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 정지적 야망이 조금 더 있어서, 국민당내 반장세력과 연합하여 장개석과는 또 다른 정부를 통해 그의 자유주의를 주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중국인민들이 공산당을 택할 것인지말이다. 물론 이렇게 되었더라면 그는 그가 설정한 자유주의와는 엇갈리겠지만 그래도 호적이 언론과 교육을 통한 비판을 주로 한 점에 대해선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조금은 소극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아쉬움도 든다.

그는 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 항상 주류 의견이나 공권력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와 그것을 인정하는 관용적 태도를 주장해왔고, 실제로 그것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언제나 펜을 들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정부와 사회에 대해 비판해왔다. 이러한 비판의 자유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일어나고 있다. 정계에서 흔히 색깔론을 들먹여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고 있고, 이에 대한 지식인들의 시각도 천차만별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최상(best)의 것이 아닌 최선(better)의 것을 선택하는 사회이다. 그런 만큼 이런 사회에서는 한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수 있는 것이다. 헌법상으로 이러한 것들을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현실적으로 그러하지 못하다. 호적이 자유중국을 주장하던 당시의 환경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유리한데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사회에서는 호적과 같은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더 늘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처한 시대와 환경이 지금과는 판이하다 할지라도, 오늘날의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그의 자유주의 실험이 '실험'에 끝나지 않고 성과가 올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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