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성석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질세라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날씨에 유난히 영향을 받는 게 작가라는 족속이다.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린 사람을 포함해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오죽하면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이강백 작)라는 연극이 있을까.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짜증 나서 못 쓰고 조금만 추우면 마음이 시려서 못 쓴다. 날씨가 좋으면 이런 좋은 날 놀지 않고 써서 뭘 하나 싶어서 못 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연인이라도 있으면 싱숭생숭해서 못 쓴다. 결국 아무 때도 못쓴다. 마감이 없으면. - 비야리카 화산의 좋은 시절 - P102

아득히 뻗은 눈길 위를 걷고 또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 구름과 안개가 개었다. 열이 나고 땀이 났다. 그렇지, 이게 삶이라는 것이다. 아니, 이것이 삶이다. 앞뒤로 췌언이 왜 필요할까.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삶’이라고. 나는 내 문제가 풀린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삶이 이와 같을 것임을, 마주치는 존재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삶 속에는 지옥도 극락도 있으리라. 비참함과 고상함은 인간 얼굴의 다른 표정일 뿐이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 - P233

베를린에 3개월가량 체류하게 되면서 그가 말한 ‘고독’이 뭔지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고독할 수밖에 없었고 독립된 자아로서 일상을 꾸려나가야 하니 바빴다. 바쁜 순간이 지나면 모래밭에 판 구덩이 속에 물이 차듯 고독이 밀려왔다. 애초에 ‘도이칠란트’를 한자로 ‘독일’이라고 표기한 것도 워낙 고독이 일상화한 나라여서인가 싶을 정도였다. - 고독이 주는 선물 - P286

나는 그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아니, 나는 오래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들을 이미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은 내 뇌리에 인쇄된 것처럼 강렬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가 다시 만남으로써 환기된 것뿐이었다. 그들은 또한 영원히 길 위에 환상처럼 나타나고 또다시 사라짐으로써 내 그리움의 보를 막고 터뜨리며 그 속을 채울 것이다. - 그 많던 뽕과 오디는 어디로 갔을까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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