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이만큼 재미있는 책도 흔치 않을 것 같다. 그저 재미있다는 표현을 쓰기엔 좀 그렇고, 통쾌하고 유쾌하다고 해야 할까.
이 단편집을 횡재한 돈으로 구입해서
집으로 갖고 들어와 방바닥에 배를 탁 깔고
가끔씩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그렇게 읽어치웠다.
이기호란 작가의 능숙한 말재간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성석제를 장난질 정말 잘하는 작가라 알고 있었으나
이기호도 그에 못지 않다.
보지도매상 사장 이야기, 본드쟁이 이야기, 우리의 최순덕씨 이야기...
그저 얘기가 재미만 있다면 뭐하러 이런 몇줄 나부랭이라도 허비하겠나.
이런 이야기 뒤끝에 남는 거리는 정말 공유했으면 좋겠다.
바구니의 언어가 역겹다면 말리고 싶지만...
일찍이 무대뽀의 기린아, 주유소 습격사건의 오성이 형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한놈만 죽인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하나만 짚겠다.
보지도매상 업주 이야기.
일단 문체는 이른바 힙합체이다.
어느 가수인지 생각은 안나지만, 일종의 패러디로
얼마전까지 나의 고등학교 친구 녀석의 컬러링이었다.
"왔어 왔어 그녀가 왔어" - 이렇게 시작하는 거다.
말은 못해도 힙합은 기막히게 하는 덜떨어진 친구 순이(맞나?).
그녀는 힙합은 잘했다.
그리고 현장에선 아저씨들을 즐겁게 하는, 白&巨의 젖가슴과 필적할만한 특장이다.
일찍이 바구니로 존재지워진 우리의 사장님, 이력.
자신의 그 "이름"을 불러준 고마운 국사 선생(왜 하필 국사지??? - 이 소설에 뭔가 모자란 인물은 이렇게 국사 곧 한국사와 관련된 사람이 많다. 아마 둘이 더 있지?)을
손봐주고 학교를 나와 직업 전선에 뛰어 듦.
몇명의 아가씨와 봉고차 전화, 간소한 사무실을 밑천으로
투철한 프로 의식을 발휘, 보지도매 업계에서 입지를 마련해감
어느날 순이의 등장.
그 모자란 순이는 전도유망한 우리의 사장님껜 하나의 모욕.
그러나 싹트는 묘한 감정.
자신의 때 덕지덕지 뭏은 옷을 신명나게 빨아주는 순이.
그래, 바구니에게도 뭔가 담을 것, 역으로 담길 것은 있다.
어느 프랑스 소설 제목에 "나는 떠난다"라는 게 있다.
그와 같은 비접착성, 일회성, 냉혈성이 싫다.
처지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는 의미가 되는 존재가 있고 나도 그런 존재가 된다.
잊지 말자. 이런 온통 바구니 같은 인간들만 있는 공간에서조차.
"우리의 바구니를 우습게 여기지 마라. 황차 너희들도 바구니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