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바람 우리 작가 그림책 (다림)
김지연 지음 / 다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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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판화 그림책]


김지연 작가님의 <백년아이>를 처음 접했을 때, 입이 딱 벌어졌다. '이게 다 판화 작업이라고?' 오랜 작업 시간을 투입해야 근사한 한 장이 나오는 작업, 판화 작가가 줄어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우직하고 어쩌면 미련하게(?) 다음 판화 그림책을 들고 돌아온 그녀.


<호랑이 바람>은 작년 4월경 우리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던 강원도 산불을 다룬 작품이다. 안타까워하던 마음도 다 사그라들고, 모두가 그 일을 잊었을 즈음에도 칼을 들고 나무판을 파고 있었을 작가의 밤들을 떠올린다. 강렬한 선은 칼자욱으로, 대담한 색 표현은 마블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 장 한 장 귀해서 쉽게 넘기기 아까운 마음들.

강원도 산불의 규모에도 압도당해 괴로웠던 우리들은 작년 호주 산불의 가공할 만한 규모 앞에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 모두 인간의 고장난 브레이크같은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알고도 그저 멀리 뉴스 창 너머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진정한 비극이다. 그럼에도 그림책 속 창모자를 쓴 조그마한 아이가 연둣빛 새싹을 다시 보듬는다.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무 한 그루는 나 자신이다. 다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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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너머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9
마리아 굴레메토바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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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은 많은 것들을 말한다.

자식에게 손을 흔들고 떠나는 연로하신 굽은 등이라든지, 모로 누워 자는 배우자의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애처로움을 준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작은 돼지의 뒷모습,

최근 그 어떤 그림책에서도 이토록 표지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적은 없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글과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이 만난 매혹적인 책 <뒷모습>은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마음이 어지럽게 흩트러질 때 한 번씩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이름 모를 사람의 뒤통수를 보곤 한다.



먼 곳을 응시하는 작은 돼지의 삶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안다는 말이 많았어요.

소소는 듣기만 했지요.

안다와 함께 사는 돼지 소소.

소소는 안다와 큰 문제없이 지냅니다. 안다가 모든 걸 말해주고, 옷도 골라주고, 뭘 하고 놀지도 정해줬거든요. 소소는 그걸로도 불편함이 없었거든요.




안다는 소소한테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알았어요.




뭘 하고 놀면 좋을지도 알았고요.



어느날 사촌이 놀러온다고 해서 소소는 마중을 나갑니다. 처음으로 집을 빠져나가 계단을 건너 탁 트인 들판으로요. 멀리 멧돼지인 사촌이 보입니다.




나서 반가워. 그런데 그게 뭐니?"

산들이가 물었어요.

"아, 이거? 이건 옷이야."

소소가 대답했지요.

"숲에서 달릴 때 불편하지 않니?"

"아니. 난 달리지 않거든."

"세상에! 달리면 얼마나 신나는데! 한 번 해 봐.

같이 달릴래?"




멧돼지는 같이 달리자고 제안하지만 소소는 선뜻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촌은 돌아가고 소소는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지요.

소소의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요동쳤겠지요.

창밖을 보며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거 아닐까요?

간만에 만나는 수채화 색감의 부드러움.

강하게 외치지 않지만 우리들 안의 소소와 우리들 안의 멧돼지를 맞딱뜨리게 하는 서사의 힘.

간만에 정말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자꾸만, 들판으로 달려나가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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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구 아저씨가 잃어버렸던 돈지갑 권정생 문학 그림책 6
권정생 지음, 정순희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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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하고 나직이 불러만 보아도 눈물이 나는 이름.

창비에서 의미있는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단편 동화를 꾸준히 그림책으로 펴 내고 있는 귀한 작업. 벌써 7권째인지 여태 몰랐던 내가 원망스럽다.



창비에서 내고 있는 이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를 모르는 분이라고 해도 <빼떼기>는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김환영 화백의 그림으로도 더욱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겨레 그림책 학교에서 이경국 선생님한테 수업 듣던 시절, 선생님이 우리더러 하시면서 해 주신 말씀.


"그림 좀 많이, 열심히 그려봐요 제발!"


"한국 사람은 두상도 달라요. 머리가 뾰족하지가 않고 크고 넓적해. 그림을 그리려면 체형이랑 머리통도 정확하게 그려야해요."


만구 아저씨의 체형이랑 차림새가 얼마나 구수한지 모르겠다.

처음에 봤을 땐 채도가 낮은 색감 사용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는데, 볼수록 정감있어서 손이 간다.

장날이 되자 고추 한 부대를 팔아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사고 남은 돈을 두툼하게 지갑에 넣은 만구 아저씨.

갑자기 똥이 마려워져 우묵한 곳에서 똥을 싸다가 그만 지갑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던 우리도 그만, 마음을 함께 졸이게 된다.



집으로 와서 지갑을 찾아보지만, 온데간데 없는 지갑.

한편 아저씨가 볼 일을 보았던 곳에서 귀여운(?) 톳제비 (경북 안동말로 도깨비)가 만구 아저씨가 흘린 지갑을 발견하게 되고, '이 물건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톳제비 가족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깜찍한(?) 실수를 하고, 다시 지갑을 그 곳에 두고 떠난다. 만구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른채 다음 날 지갑을 찾아나게 된다.

희미해서 지워질 것 같은 색감,

구수한 만구 아저씨와 표정과 몸놀림을 보니 그저 마음이 푸근해진다.

앞으로도 계속될 권정생 선생님 그림책 작업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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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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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담을 넘은 아이] 리뷰


🧣요즘 할매들이 대세다. 할매들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유튜브도 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다는 우리나라에도 문맹들이 있다. 주로 할머니들이다. 이렇게 지나버린 세월이 한스럽고, 젊은 시절이 한없이 그립다고 말하는 한 때 소녀였던 그들이다.


🖌간만에 캐릭터가 단단하게 살아있는 책을 읽었다. 이야기의 멱살을 거머쥐고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 ‘푸실이’ 라는 여자아이 캐릭터를 만났다. 조선시대의 여자아이로 태어나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물론 글을 배우지도 못했던 아이 푸실이가 바로 그 강력한 주인공이다. 푸실이 아래 남동생 귀동이는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며 부모님이 끔찍이 아끼신다. 막내 동생은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젖먹이. 푸실이의 엄마 귀손네는 부잣집의 아기도련님의 죽은 마나님 대신 젖을 주는 유모 역할로 부잣집에 한 동안 들어가 있게 된다. 먹을 것이 너무 귀해 굶기가 일쑤인 날들, 귀손네는 푸실이에게 산에 가서 뭐라도 먹을 걸 구해오라고 앙칼지게 말한다. 거기서 푸실이는 먹을 것 대신 더욱 귀한 것을 만난다.


💬푸실이는 다래끼에서 책을 꺼냈다. 친한 동무라도 되는 양 책을 쓰다듬었다. 산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푸실이 가슴은 말도 못하게 두근거렸다. 길에 떨어진 엽전 꾸러미나 금덩어리를 보았더라도 그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슴이 왜 뛰었는지 푸실이는 알 수 없었다.”


🧶계집아이가 글줄이나 읽는 일이 충분히 혼나거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었던 그 때. 지금의 아이들은 푸실이의 마음에 어떤 방식으로 공감하게 될까?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책을 읽는 것이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생명수와도 같은 일이 된다는 굵직함이 이 작품을 만나는 아이들에게 와 닿을 수 있기만 하다면!


💬아기는 어쩌라고 젖을 팔았어요. 아기는 어쩌라고.”
💬계집애 목숨값이 사내애 목숨값하고 같이? 애초에 계집으로 태어난 게 죄지.”


어머니 말에 푸실이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짚신 한 짝 같, 병아리 한 마리 값은 들어 봤다.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고 입의 숫자로 세는 노비 한 구의 값도 들어 봤다. 그 서러운 나눔도 모자라 사내의 값과 게집의 값이 또 다르게 나뉜다니…….배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불이 치솟아 한달음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존재들과 하찮게 여겨지는 자신을 힘껏 껴안은 푸실이. 우연히 만나 글줄을 읽게 된 능력을 결코 소홀히하지 않는 푸실이의 당찬 주먹이 두 눈에 보이는 듯하다. 어린 푸실이는 커서 어떤 여생을 살았을까?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나,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의 재발견에 새삼 감사하다.


🌲이건 왜 이렇고 저건 또 왜 그러냐고 묻고 또 물었던, 푸실이. 푸실이의 마지막 말을 나도 세상과 나에게 되묻는다.


‘어찌 살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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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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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나무들을 죽을 때까지 다 알고 죽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나무와의 인사를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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