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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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아기의 돌잔치 (난 조카라고 부르는 걸 안 좋아한다. 조카라고 부르면, 그게 동생의 자식인지, 언니의 자식인지, 오빠의 자식인지 모르지 않는가.) 때문에 울산 내려간 김에 여동생 집에서 발견하여 "빌려도 돼?" 하고 냉큼 빌려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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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빌려봐야 안 본다. 빌려서 몇 년씩 안 보고 책장에 꽂아두기 일쑤다. 예니의 책 여러권, 알굴언니 책, 페타님 책, 윤미 책 주렁주렁 책장에 다 꽂아두고, 다른 책을 한달에 수십권씩 사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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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고약한 성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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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에 출간된 책이다. 출간된 건 알았지만, 어영부영하다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책. 영원히 놓쳤으면 아까웠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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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언젠가 어떤 종류든 책을 꼭 내고 싶다고 생각을 한 이후로, 작가들의 글을 유심히 관찰하며 읽는 습관이 생겼다. 단어 하나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아, 낱말을 수집하며 메모장에 적으며 책을 읽는다. 연필로 밑줄을 긋고, 책에 더럽게 메모하며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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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도 느낀다. 아, 이렇게 재미있는데 남다르게, 유연한데 분명하게 쓸 줄 알려면 어느만큼의 세월이 걸려왔던 것일까. 참 유쾌하게 우아한 김중혁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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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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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몸 에세이가 바로 바디무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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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책을 빌리는 바람에 밑줄을 그을 수 없어 꽤나 고통(?) 스러웠지만,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가며 기록을 했다. 인상적인 구절 몇 개만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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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이미 많은 걸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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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힘들게 마친 회사원들의 팔은 아래로 축 처져 있지만 승리를 거둔 사람들의 팔은 위로 뻗어 있다. 팔을 위로 뻗는다는 것은 중력데 대항할 만큼 힘이 넘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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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적었다. "목숨이 유한하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나는 죽음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15세의 내 자아는 세상이 평화롭고 내 행복이 튼튼할 때에도 언젠가 정해진 날에 덮쳐올 철저한 비존재 상태, 나의 철저한 비존재 상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한 사멸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려워서 초연하게 맞선다는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용기' 라고 부르는 것은 뭘 모르는 멍청한 소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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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플레인 같은 단어가 있다면 '우머내레이션womanarration' 같은 단어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좀더 이야기에 익숙해져야 하고, 소설을 더 많이 읽어야 하고, 더 많이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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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나가지 않고도 우주 감각과 유사한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하나 알고있다. 우주에서처럼 시간이 휘고, 중력이 달라지며, 몸무게가 가벼워지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응시할 수 있는 곳을 한 군데 알고 있다. 바로 책 속, 특히 소설책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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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나가면 시간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달라진다. 시계도 소용없어진다. 우주선은 지구와 계속 통신을 해야 하는데 대체 어떤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전 세계의 시계는 동일한 시간에 다른 시각을 가리킨다. 미국에만 네 개의 표준시가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니치 표준시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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