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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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의 첫 에세이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리뷰를 써달라고 기다리는 5-6권의 책을 제치고 이 책의 리뷰부터 쓴다. 김보통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만자 책을 통해서였다. 지금은 만날 길 없는 어떤 사람에게 선물받아 읽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그려도 만화가 되나?'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작품이었다. 어쩌다보니 페이스북에서 그의 일상과 일을 해내는 하루하루를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다.

김보통 작가의 말과 그림은 "그래, 좋은 게 좋은거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갈거야." 따위의 어설픈 위로는 절대 해주지 않는다. 실제로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늘 최악을 각오하고 있는 듯한 담담함, 체념이 아닌 초연함이 느껴져서 그가 살아온 발자욱이 궁금했던 터였다.

이 책에,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책 표지에 보면 '온 힘을 다해 그 길에서 도망친 퇴사자 김보통의 비범한 방황기' 라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이만한 돈 주는 데가 어딨다고, 버텨보자." 라고 했던 내가 꼰대였구나- 바로 고개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김보통 작가는 글에 어떠한 멋도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혀 나간다. 말 그대로 길쭉한 한 호흡에 훅, 읽힌다. 그 가운데 가끔 숨이 턱, 막히고 한숨이 폭, 나올 때가 있다. 그렇다면 글밭에서 쉬어갈 고개가 맞다. 작가도 거기까지 쓰고 가슴도 한 번 쓸어내리고 숨도 한 번 쉬었다는 것일거다.

생활비가 없어 식비를 줄이고, 줄이다 존엄을 내려놓게 되었던 그가 다시 존엄을 찾기 위해 브라우니를 굽기 시작했다는 말은 좀 아프기도 하고, 지금 와서 읽는 우리로서는 사랑스럽고 좀 고맙다.

가슴 쓰리거나 속이 시원했던 밑줄 친 몇 구절만 이 곳에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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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저녁 6시에 시작한 회의가 밤 12시에 끝났다. 장장 여섯 시간에 걸친 회의중에 내 옆자리에 앉은 과장은 고개를 돌린 채 울었다.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다. 뭔가를 끄적이는 척하고 있던 다이어리 위로 눈믈이 떨어지고, 그것을 손으로 쓰윽 닦아내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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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30여 년간 박수를 치느라 몸과 마음은 너덜거리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다음' 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의도와 보상 없이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나가기 위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암환자 박과장은) 나름대로 힘차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요양해야 할 사람으로만 보였다. "야. 박과장. 무슨 말이 그렇게 기냐. 암이라는 거 오진 아니냐?" 누군가 말하자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내가 가진 몇 장의 카드로 승부를 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가진 카드가 뭔지 나도 몰라. 알려면 뒤집어야 하는데, 뒤집으면 게임의 승패가 그대로 결정나. 그게 아아아주 괴로워."



"그때 문득 '그러면 된 거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고난과 시련과 역경과 패배를 겪고, 와중에 스픔과 고통과 분노와 증오의 나날들이 닥쳐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그리고 자기비하로 보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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