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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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양양의 에세이집.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이대 근처에 있는 음악서점 '초원서점' 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아, 양양!" 했었다. 그땐 다른 책을 구입했고, 시간이 좀 지나 이 책을 사서 읽었다. 양양을 떠올리면 약간 허스키한 따스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젊은 장필순같은 목소리랄까. '봄봄' 이라는 곡을 가장 좋아하는데 지금은 가을이네. 지금 들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 계절에 들어야 뮤지션의 의도를 가장 살릴 수 있으니까 내년 봄까지 참을 예정이다. 

양양의 어마무시한 매력은 바로 이거다. 타인의 쓸쓸함을 발견할 줄 알고 그 쓸쓸함 안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잘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저런 곡들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이런 글들을 쓰는구나. 참 담백하고 결이 거친 통밀쿠키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네. 시즈닝도 안 되어 있고, 색도 일부러 하얗게 만들지 않고 정제 밀가루같은 걸로 굽지도 않은 쿠키. 자꾸 자꾸 먹고 싶어서 손이 가는 그런 과자처럼 말이다. 게다가 먹으면 몸에 좋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먼저 양양의 곡들을 듣고, 그 다음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그런 뒤, 기회가 닿는다면 공연을 함께 보러 가면 좋겠다. 

아깐 위에서 가을이니 '봄봄' 을 듣지 않겠다고 했다. 근데 난 지금 '봄봄' 을 듣고 있다. 좋은 데 어떡하란 말이냐.

그녀의 성숙하고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 몇 개 이 곳에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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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옷자락을 바라만 봐도 이제 나는 그 세월의 냄새를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삶의 체취, 정정당당한 냄새. 그 냄새를 가진 나도 익제 거기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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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아주 작거나 예상할 수 없는 것들과 어울린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와 같다고 하면 어떨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저 한 그루 나무 같겠지만 그 나무 속에 얼마나 많은 새들이 앉아 있는지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이렇게 한가로우며 풍요로운 우리는, 청춘이다. 나는 내가, 우리가 이렇게 누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의 하늘과 멈춘 이 시간이 더없이 애틋하다. 제각각의 구름들, 흘러가는 사람들, 그리고 인생의 잊지못할 한 점 속에 우리가 있다. 어김없는 하늘과 어김없는 바람, 언제나 어김없는 것들 속에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간다. 머물다 가는 먼지여도 이런 순간은 황홀하다."



"언제 어느 때 눈물이 나는지는 여전히, 그리고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사소하고 하찮은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나무 아래 앉았는데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바람에 날릴 때, 비행기가 힘껏 돋움을 하여 이륙하는 순간에, 새벽녘, 혼잡한 지하철역 사이를 걸어가는 앞사람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볼 때, 낯선 길 위에서 오랜만에 그 음악을 들을 때, 영화 속에서 아빠와 아들이 탁구를 칠 때, 낡은 우체통이 거기 있을 때, 화가가 뿌려놓은 파란 물감 앞에서, 깊은 밤 내 마음 같은 문장 하나를 만났을 때, 뭉툭한 것에 찔렸을 때, 차가운 것에 데었을 때, 뜨거운 것에 얼어붙었을 때, 구름은 흘러가고 어딘가에서 누군가 울고 있을 때, 개미가 제 몸통보다 큰 부스러기를 이고 갈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봄꽃 향기는 여전히 아찔할 때, 사람이 예쁘게 웃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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