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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올해 들어 쓰는 백번째 리뷰. 어떤 책으로 100번째를 장식할까 살짝 고민했는데, 역시 이 책으로 낙찰!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몇 달 전이었나. 효리네 민박 TV 방송에 박보검이 읽는 바람에 또 한동안 사람들이 수런거렸던 그 책. 그때 박보검이 즐겁게 푹 빠져 읽었던 게 아니라, 읽다가 꼬박꼬박 졸아버렸던 책. 그럼에도 갑자기 판매량이 올랐던 책이다.
나는 이 책을 2016년에 샀다. 출간되자마자 산 셈이다. 책이 나오자마자 이 책이 좋다는 입소문이 동동 떠 다녔고, 자칭 책 얼리어답터 답게 제대로 목차를 살피지도 않고 바로 주문했다. ‘뭐, 어련히 좋겠지.’
이 책은 쓰기를 말하는 문장 104개를 모아둔 책이다. 그 한 문장마다 작가의 이야기가 소담스럽게 모...여 있고. 작가가 모은 첫 문장은 이랬다.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꿀 가능성을 대변한다.” -데이비드 실즈-
난 그때만 해도 글쓰기에 관심이 크게 없었다. 페이스북에나 재미삼아 조금씩 글을 쓰긴 했지만, 진지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나였다. 저 문장이 바로 뇌로 흡수될 리 없었다. ‘에이, 뭐야.’ 하고는 그길로 책을 꽂아 두었다. 가끔 펼쳐보려곤 했지만, 읽히지 않아 그대로 모셔 두기만 했다. 박보검 때문에 다시 이 책이 화제가 되고 나서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며칠 전, 책장을 찬찬히 살피며 내가 여태 읽어온 책들을 한 권씩 펼쳐 보았다. 밑줄을 부지런히도 그어 두었구나. 말도 안 되는 메모들이 꽤나 끼적거려놨고. 보다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사 두고 안 읽은 책들은 뭐가 있나 또 살펴 보았다. 왜 이렇게 많냐. 그 중의 한 권이 이 초록색 표지의 책이었고, 내가 책장에서 탈출시켰다. 위대한 탈출!
이 책을 어쩌면 좋을까. 나는 이 책을 어쩌자고 읽었나. 평생 이 책만 붙잡고 있어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하루에 한 문장씩만 입에 넣고 굴려도 하루종일 배가 부를 것 같은데. 어쩌나. 어쩌나.
왼쪽 페이지에는 작가들의 글쓰기 한 문장. 오른쪽 페이지에는 은유 작가의 조약들 같은 낱말과 사유들. 눈이 팽팽 돌아가고 연필도 바삐 움직였다.
나도 은유 작가님처럼 어디 가서 내 직업을 말하는 대신 ‘글 쓰는 사람인데요.’ 말해도 될까?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진 그런 말을 아껴야 할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도 될까? 차라리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날마다 글을 읽고, 쓰고, 글쓰기 생각만 하니까 어제보단 오늘이 낫고, 오늘보단 내일이 나을 거다. 그럴 거다.
밑줄은 넘쳐나서 다 옮길 수도 없고, 별표에 하트에 동그라미까지 엄청나게 쳐 둔 문장 몇 개만 함께 맛보자. 그 김에 누가 이 책을 사서 읽기라도 나면 나야 땡큐다. 호호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는 거 ‘같은’ 것의 차이. 하루 이틀은 쓰나 안 쓰나 똑같지만 한 해 두 해 넘기면 다르다. 다행히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잘 쓰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글이 어서 늘기를 재촉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쓰는 동안 안 보이는 성장의 곡선을 통과했다. 어떤 불확실성의 구간을 넘겨야 근육이 생기는 것은 몸이나 글이나 같은 이치였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 몸을 어루만지는 오월의 햇살 같은 슬픔의 공동체를 상상한다.”
“쓰기 전엔 잘 쓸 수도 없지만 자기가 얼마나 못 쓰는 줄도 모른다는 것. 써야 알고 알아야 나아지고 나아지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안심한다. 안 쓰면 불안하고 쓰면 안심하는 사람, 그렇게 글 쓰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