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3번 안석뽕 - 제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271
진형민 지음, 한지선 그림 / 창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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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글 잘 쓰시기로 소문난 진형민 작가의 <기호 3번 안석뽕>을 마침내 읽었다.

떡집 아들 안석진이 친구들 등쌀에 여차저차 반은 장난으로 전교 어린이 선거에 나가게 됐다. 돈 많은 집에서 팍팍 밀어줘서 당선될까 말까인데,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당사자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여전히 뭐가 뛰어난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 많이 달라졌다곤 해도 아무래도 뭘 아주 잘하거나, 아니면 문제를 일으켜야 관심받을 수 있는 곳. 이도저도 아닌 아이들은 숨만 쉬고 살아도 모르는 곳. 작가의 묘사가 뼈아프다....

"하지만 학교는 원래 공부 잘하는 애들 위주로 돌아가는 데 아닌가. 그러니까 공부가 별로인 애들은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을 뿐더러 혹시 어쩌다가 무슨 일을 잠깥 맡는다 해도 다른 애들이 걔 말을 잘 안 듣게 돼 있다. 공부도 못하는 게 재수 없이 설친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 거다. 그러니 별수 있나, 조용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수밖에."

3번 후보로 출마하고 나서도 쭈삣쭈삣 고개만 숙이고 있는 주인공 석진이가 좋았다. 하나도 안 특별한, 진짜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주인공들이 좋다. 그림책 <프레데릭>의 생쥐 프레데릭처럼 예술가도 아니고 <점>의 주인공 베티처럼 선생님한테 따박따박 자기 할 말 할 줄 아는 타입도 아니고 어물어물 쭈뼛쭈뼛한 캐릭터. 세상엔 사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뚜렷이 자신의 의견도 없고, 그나마 하고 싶은 말도 할 줄 모르던 석진이가 끝끝내 단상에 올라 후보 소견 발표를 하는 장면은 내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그 장면을 잘 구현해낸 일러스트레이터 한지선님의 그림도 사랑스러웠다. 색연필 느낌이 따스하다.

가슴이 상쾌해지는 부분도 옮겨본다.

"그런데 단상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주 달랐다. 작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 어느 순간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걸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조각조각인 우리들이 다 모이면 이런 그림이 되는구나, 하는 걸 나는 난생처음 깨달았다."

전교어린이회에 나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반대할까봐 미리 포기했던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가슴을 시원하게 비워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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