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않은일 #비비언고닉 #글항아리 #티저북 #서평단티저북이 도착했다. 포장을 뜯고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은 후 그 자리에서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버렸다. 문득 삶의 끝이 두려울 때가 있다. 죽음의 고통이 무섭기보다 더이상 내 자신이 "사유"하지 않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끝나지 않은 일] 티저북을 읽으며 조금 치유가 되었다. 그래. 읽고 쓰는 관찰자 고닉, 그녀가 안내하는 사적 영역의 독서가 공적 영역의 실천이 되는 다시 읽기의 매력. 인생의 중년기를 맞아 노년기로 넘어가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글이 만들어 내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 작가라는 창조자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세계. 그 세계를 함께 읽어내는 독자에 의해 다시 재생산되는 도플갱어. 그런 그가 살아온 세월을 담아 다시 읽어내며 만들어내는 문장들의 향연은 정말 미칠 것 같이 빠져들게 되는 예술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여자라면 누구든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조차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 불합리함을 이해하고 세상과 맞서지 않고 살아간다. 결혼과 아이. 내 사유의 영역과 어울리지 않는 문화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 안에서 내 자아와 숱한 싸움을 하며 싱글이 아닌 커플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인생에 시한부가 켜졌다. 심장의 구멍은 내게 남은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신체가 가진 수명의 시간을 알고나니 참고 눌러왔던 내면의 세계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이제 누르고 싶지가 않다. 내면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억압된 내 자신에 대한 사유의 분출은 책 읽기를 통해 늘어나는 화의 분화구 크기 덕에 서서히 빠져 나와 천천히 식어간다. 내가 나를 둘러싼 현실을 극단적으로 져버리지 않고 그 안에서 천천히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고닉의 80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사적 글 읽기를 통해 공적 글 쓰기. 바로 지금 고닉의 글을 읽고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운이 좋게 다시 읽고 다시 쓰고 있는 고닉의 80대를 만났다면 나 역시 숱한 책들을 다시 읽고 쓴 덕분일 것이다.다만 삶(Life)의 무게를 담아 글을 읽고 쓰는 고닉과 달리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삶(Life)의 도파민이 터지는 기분이다. 끝나지 않은 일. 제목만으로도 내 삶을 지속시켜주는 길을 터준다. 기회가 되면 온글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