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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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사는 세상을 자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야.
수학 너머 진짜 세상에 진짜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으니.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게나 소름이 끼친다.
우리가 살아가는 첨단 기술 세상의 많은 부분이 단 한 사람의 편집증적 집착으로 인해,
이제 우리는 그것들을 창조할 뿐 아니라 돌봐야 할 책임에 직면했다.
- 본문 중

​그는 인간의 집단 광기를 경험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 결과를 미리 계산하여 냉전시대를 벗어날 새로운 희망을 창조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계산하여 종말을 알기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가드를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란 존재만이 가진 불확실성.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에 대한 갈망. 어림짐작할 수 있는 컴퓨터.

물리학을 전공할 때 그런 욕심이 있었다.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한 이론을 만들고 싶다는 지적 욕구. 그렇게 의료공학을 전공하고 회사로 들어갔을 때 문득 나의 연구결과가 아픈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닌 나의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리기 위해 또다른 생명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고 교사가 되어 과학과 동떨어진 느린 삶을 살며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을 과학기술이 아닌 저성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금.
매니악을 읽으며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지적 욕구에 대한 갈망이 또다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과학자의 세계에서만 이해되고 그 세계에서만 윤리적으로 논의되던 문제들이 이렇게 작가를 통해 작품 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의 삶, 일상을 벗어난 그 광기의 사고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 1의 고민도 없이 그 길을 가지않을 수 있을까.
단언할 수 없는 것 같다.

과학자들이 만들고 정치가들이 실현시킨 현란하고 위험한 기술 앞에 한없이 무지한 대중으로 전락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진짜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에 의해 나치가 집단망상에 빠져 저지르는 행동은 마치 자기복제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잘못된 생각이 복제되어 뻗어나가는 그 모습에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가 인류를 대하는 태도는 거기서 시작이 되었을테니.
아니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질 필요가 없다고 친구에게 말했지만, 사실 그 책임에 대해 만회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인류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 그려나갔을까.

​매니악은 슬프다. 안쓰럽다.
과학을 다루려는 아이들은 한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순수수학에 순수를 가르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그의 첫 스승의 말처럼.
지금 우리나라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 의대를 가기 위한 공부를 하는 이 사회적 광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근원적인 질문은 한심하고 따분해 보이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질문이다.

질문하고 생각하고.
매니악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우리는 어떤 대답을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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