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아이들 - 아동 문학 이론의 새로운 지평 현대의 문학 이론 31
마리나 니콜라예바 지음,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아래 서평을 써주신 분들이 이 책의 장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동화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번역에 대한 점이다. 김서정 씨는 내가 아는 한 많은 동화를 번역했고 동화에 대한 연구서도 내놓은 만큼 동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깊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동화책 제목에 대해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보이는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긴양말 삐삐>로 나오는 책은 마땅히 <삐삐 롱스타킹>이라고 써야 한다. 왜냐하면 롱스타킹은 긴양말이라는 일반명사로 쓰인 것이 아니다. 삐삐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것은 삐삐의 성이다. 이 책의 번역판은 시공사에서 3권으로 나와있다. 첫권의 제목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삐삐의 번역은 용의 아이들이 나온 이후에 나왔다)

또 동화와 만화(또는 영화) 간에 연계점이 없다는 점을 이 책 안에서 발견하는 씁쓸함이 있다. 가령 <아스트릭스>라고 번역된 불어 작품은 <아스테릭스>가 맞다. 과연 몰랐던 것일까? <위니 더 푸우>를 국내 번역판대로 <곰돌이 푸우는 아무도 못말려>로 하면 안되는 것일까? 더구나 이 번역판은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로 그런 방식의 번역을 시도한 책이다. (번역을 이오덕 선생이 다시 한번 다듬음으로써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역시 참고로 말하자면 푸우의 번역은 용의 아이들보다 먼저 되어 있었다. 다른 출판사의 책들을 달아놓는 것이 광고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예는 계속 댈 수 있다. <틴틴>이라고 나오는 만화책은 <땡땡>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내 번역도 물론 땡땡으로 되어 있다. 번역은 최근에 나왔지만 이미 오래 전에 국내 잡지에 연재된 적도 있다)

김서정 씨는 이 책 안에서 저자가 내놓는 새로운 개념의 적절한 번역어에 대해서 무척 고민하고 조심스러우면서 성의있는 자세로 단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 노력이 실제 동화에까지 미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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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7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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