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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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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쁘고 귀엽다. 하는 짓이 깜찍하기도 하다. 좀 맥락없이 구는 듯도 하지만, 보고 있자니 기분 전환도 되고, 그것이 깜찍함의 원천임을 아니, 못내 토닥여 주고 싶어진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지만, 한번 정서적으로 밀착되고 나면 떼어놓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솔직히 '쓸모'는 없다. 그러나, 쓸모 없다는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이 쏟아부은 정이 더욱 각별하고 스스로 사랑스러워진다.

이것이 펫이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밤의 거미원숭이>는 그런 면에서 소설로서 완벽한 '펫'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글은 짧고, 터무니 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깜찍하고 귀엽다. 보고 있으면 기분 전환도 되고, 도저히 무거운 기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한번 손에 들면, 대체로 끝까지 읽어내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소설로서 유용성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나는 그가 부럽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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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미국 : 할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의미 살림지식총서 7
김성곤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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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인터넷 핑계를 대고 싶진 않지만 (생각의)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구어체와 짧은 스크롤에 익숙해지면서 긴 글을 읽는 일은 지겹거나 귀찮고, 긴 글을 읽는 일이 드무니 생각도 진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다. 인터넷 서점 덕에 책은 쉴 새 없이 사들이지만 몇십페이지만 읽고 던져버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그런 차원에서, 문고판은 일종의 '전략'이다. 읽기에도, 사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책. 한 때 국내외 문학작품들을 값싸게 공급해왔던 문고판들이 이제는 인문, 사회과학의 관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이슈 위주로 접근하되 너무 가볍지 않게, 독자들의 무지를 일깨우기보다 지적인 허영을 충족시켜주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둔 문고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침체기라는 출판 시장의 돌파구인지, 혹은 출판 시장의 사양(斜陽)을 짐짓 외면하려는 슈가 코팅인지 판단은 아직 유보된 채다.

살림에서 내놓은 '살림지식총서'는, 두어권 읽은 뒤 나온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나, 후자쪽에 가깝다는 의심이 든다. 미국과 신화, 대중문화를 주제로 펴낸 문고판 20여권은 '기획의 승리'임에 틀림없지만, 크고 시원시원한 활자에 100페이지가 채 안되는 분량은 문고판이 부실한 내용의 변명일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힌다. 아니, 오로지 혐의는 김성곤 선생의 책이 (기대보다) 평이했다는 데 있다.

<영화로 보는 미국-할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의미>는 그 거대한 제목에 비해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정치한 분석보다는 개념적 유형화에 힘쓰다 보니 각 유형별로 수많은 영화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어쩐지 아쉬운 감정을 이끈다. 김성곤 선생은 이 책의 목표를 '영화가 문화 연구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첫 인식 단계에 독자들을 데려오는 것'쯤으로 잡으신 듯 한데, 선생의 역량에 비해 너무 쉬운 목표가 아니었나 싶다.

그나저나 그 '출발 단계' 언저리를 궁시렁 궁시렁 배회하면서 더 이상 나아가기는 귀찮아 하고 있는 내가, 이러구러 제일 형편없는 문고 사이즈 인간이었던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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