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 천만 비정규직 시대의 희망선언
홍명교 지음 / 아고라 / 2011년 9월
평점 :
오랫동안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온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슬프고 화가 났다. 언제나 나 하나만 생각했지 다른 이들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싶었다. 텔레비전이나 트위터, 잡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 아프긴 했지만 그저 그 때만 잠깐 그랬을 뿐, 남의 일이라고 넘겨버렸던 듯싶다.
하지만 아직 노동자도 아닌 구직자인 나로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홍대 청소노동자인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힘들게 일하시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져 매우 속상하고 화가 났다.
어째서 많이 가진 자들은 없는 자가 가진 마지막 동전까지 앗아가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근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는 한진중공업·쌍용차 파업이나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삼성반도체 산재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자본가들이 노동자(사람)보다 이윤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정부와 언론을 등에 업고 오래 전부터 꼼수를 마련했다. 자본가들은 초과수당은 물론 최저임금제조차 지키지 않았으며 근로자를 간접 고용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일자리 창출을 앞세워 정부는 비정규직, 인턴, 임시직 노동자들을 양산했다. 여기에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은 손발을 맞춰 '경제성장'과 노동'유연화'가 이루어졌다고 철저히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제 노동자를 이간질해 분열을 조장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자본가와 경찰을 보내 이를 지지하는 정부, 정부와 자본가 구미에 맞는 뉴스만 보도하는 다수의 언론은 지겹고 끔찍하다.

지은이 홍명교 님은 이러한 현실을 훨씬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이웃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포함되어 있는 박건웅·심흥아·전지은 님의 만화 역시 우리 가까이에 유령처럼,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노동자들과 방황하는 청춘인 우리들의 초상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칫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가 만화를 통해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홍대 청소근로자들의 경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이중 삼중의 억압을 받고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학교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온갖 집안일을 떠맡아야 한다. 하지만 가사일은 죽어라 하면 티가 안 나고 조금만 안 하면 눈에 띄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그들은 죽어라 일하지만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인정은 커녕 유령취급을 받는다.(ㅠㅠ)
대학교 청소근로자들 뿐만이 아니다. 커다란 빌딩숲의 청소근로자들,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의 근로자들, 재능교육 근로자들,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임시직, 인턴 노동자들이 모두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할 것을, 함께 '연대'해야 함을 주장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브라질 민중들이 외쳤다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낯뜨거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관계있음'을 의식하고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싶어졌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처럼 자기 안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