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정원 - 히틀러와의 1년, 그 황홀하고도 고통스런 기억
에릭 라슨 지음, 원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는 책들이 있다. 

"야수의 정원"이 그렇다. 

 

1933년 수상이 된 히틀러.. 그리고 불과 1년만에 독일은 야수가 되버린다.

처음 많은 이들이 히틀러 정권의 행태를 코미디라고 조롱했다.

말이 안된다고.. 때가 어느땐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일들이 생기냐고.

 

그로부터 1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끝없는 감시, 잔혹한 처벌, 그리고 사람들의 공포.

"너 아직 살아있니?"

히틀러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만 했다.

 

왜 그랬을까.

왜 1930년대 초반 파시즘이란게 전세계적으로 나타났을까.

독일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1929년 경제대공황.. 밥그릇.. 우경화.. 파시스트들의 세력확산..

이런 정치경제적 분석도 옳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인간에 대한 "증오"와 "비겁함"이 보다 깊은 원인이 아닐까.

 

유대인때문에 아리안인(독일인)들이 죽는다는 대중들의 증오심.

그리고 나치의 파쇼적 "획일화" 정책에 침묵하는 인간들의 비겁함.

이런 증오심과 비겁함이 파시즘이란 괴물을 낳았던 것은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인간들의 "생각없음"이 파시즘의 원인이라고 했지만..

이 말엔 인간들이 "멍청"하다는 먹물들의 거만함이 깔려 있는것 같아 동의하기 어렵다.

차라리 이렇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파시즘은 인간의 생각없음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용기없음" 때문이라고.

 

파시즘은 2012년 대한민국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과 비겁함이 존재하는한 파시즘은 현재진행형이다.

 

제3세계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여성에 대한 혐오..

이러한 증오심과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에 침묵하는 비겁함이 핵융합을 한다면..

언제라도 대한민국은 1930년대 초 독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음험한 권력이지 인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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