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에서 푸코의 The birth of biopolitics 가 드디어 번역돼 나왔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일단 반갑고, 또 역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소승은 푸코 전공자도.. 그렇다고 철학 전공자도 아니지만..

얼마전 모 저널에 푸코주의.. 어쩌고 하는 논문(현재 출판작업중)을 투고한 적이 있다.

아마추어리즘에 충만한 논문이고.. 또 그래서 더더욱 애정어린 글이다. 

 

그 논문에서 인용한 푸코의 핵심 문헌은 3가지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앞 두권은 국역본과 영역본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읽었고..

생명관리정치는 번역이 안돼 영역본을 읽었다.

불어원전을 보는게 최고겠으나.. 불어라곤 고딩때 예쁜 불어선생님한테 배운게 전부다.

세권 모두 집필서가 아니라 푸코가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행한 강연록이다.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 "푸코 천재 맞다"

후기 푸코의 방법론을 푸코는 스스로 "계보학"이라 칭한다.

쉽게 눈으로 보이는 거.. 상식적인 거.. 뻔한거.. 이런걸 뒤집어 보자는 거다.

전복적 사고.. 앎의 봉기.. 상식의 배후에 자리잡은 권력관계 뒤비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로 주권권력을 다루고..

안전영토인구는 자유주의 통치성을..

마지막 생명정치는 신자유주의를 다룬다.

 

모두 놀라운 저작들이지만..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푸코의 혜안이 더더욱 돋보인다.

레이건.. 대처류의 권력들이 씨앗을 퍼뜨린 신자유주의..

이후 30년동안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를 휩쓸었다.

모든 가치의 핵심기준은 딱 하나. "거 돈되니?"

 

인간성은 파괴되고.. 공동체도 해체되고..

모든 인간은 효율성을 대원칙으로 하는 체제의 충순한 노동기계가 되고 말았다.

대학? 연구의 질이 아니라 논문 편수로.. 교수가 되고 연구비를 챙긴다.

사고하는 주체로서의 진득한 연구는 없고.. 붕어빵 논문들만 양상된다.

논문 기계가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의 이면을 푸코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포착하고 해부한다.

푸코는 그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전후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 미국의 시카고 학파에서 찾는다.

모두 국가개입에 대한 혐오,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독일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더 막나간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모든 생활.. 결혼, 육아, 범죄 등등까지도 효율성의 논리로 재단한다.

인간을 존엄성을 가지는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 본다.

"인적 자본(human capital)" 무시무시한 단어다.

영화 매트릭스속 인간과 닮았다.

가상현실은 찬란하지만.. 그저 가상일뿐이다.

현실속 인간은 인공자궁에서 갇혀 기계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인간 건전지일 뿐이다.  

 

그러나 푸코가 신자유주의의 핵심으로 꼽는 건 뭐니뭐니 해도 "경쟁"이란 단어다.

그는 강변한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인간을 일인기업가로 만든다고.

따라서 모든 인간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고.

남보다 더 나은 것을 생산할때에만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30년.. 우리네 사회를 보는 것 같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강화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외되고.. 배제되고.. 탄압되는가. 

 

인간도 생물이니 진화의 대상일터이고.. 그렇다면 경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어떤 경쟁인가라는 문제다.

너죽고 나살자의 경쟁인가.. 아니면 너살고 나살자식 경쟁인가.

동물세계를 보면.. 먹이사슬 관계를 빼고(그것도 딱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동류끼리는 너살고 나살자식 논리가 지배한다. 고상한 말로 상생이라 하는가.  

언젠가 다큐에서 남극대륙의 추위에 집단적으로 대항하는 펭귄들의 모습에 감동받은적이 있다.  

수천마리의 펭귄들이 밀집대형을 이뤄 거센 눈보라를 견뎌내는 장면.

 

신자유주의가 괴물인 것은 바로 이런 동류 생물들의 연대의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털없는 원숭이 인간" 지구상 유일하게 한종만 있는 생물인 인간들의 공동체는 철저히 짓밟힌다.

어쨌든 이런 신자유주의도 이젠 끝물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태껏 친재벌 정치권력이 요새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이던가.

경제민주화.. 복지.. 국민행복.. 

그들의 카멜라온 자기변신이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말이라도 고맙다.

 

푸코의 논의는 한국정치판에서 돌아가는 양태를 뒤집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준다.

결국 권력이 원하는 국민행복이라는 것은..

지리산에 반달곰을 풀어놓고 우리에 갇혀 있는 것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물론 그 반달곰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전자 장치가 달려있다.

정말 행복할까?

 

푸코는 말한다.

권력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한 거라고.

어떤 이가 푸코보고 그럼 당신의 권력은 또 뭐냐? 저항권력은 권력 아닌가? 라고 비판하자..

푸코는 또 이렇게 답한다.

 

"그래.. 우리는 우리에 대항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어쩌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