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섧고 떫은 삶을 위해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공선옥은 오달지다. 민들레, 개방초, 쑥부쟁이, 엉겅퀴, 개달개비인 듯 작고 여린 들판의 빛나는 들풀 같으면서도 강단 있고 암팡지다. 돈벌이 수단이면서 밥 먹게 해주는 고마운 일인, 소설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하거니와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삶의 성실함도 갖추고 있다. 일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대강 하는 것을 어정이라고 하고 무슨 일을 정성껏 하는 손을 ‘살손’이라고 하는데, 일을 정성을 다해 힘껏 하는 것을 ‘살손을 붙인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일하며 써온 공선옥의 소설은 한결 같이 꾸준하고 바지런하다. ‘서릊는다’는 말은 좋지 못한 것을 쓸어 치운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 ‘설거지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공선옥이야말로 우리 문단에서 말끔하고 섬섬하게 설거지하며 살아가는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한국문단의 씁쓸한 특성상 소설은 현실을 살게 해주는 예술의 영역이고 산문은 예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밥벌이의 수단이거나 희번지르르한 단상의 기록으로 그치기 십상이기에 소설가의 소설과 산문은 문장의 깊이나 섬세함이 달라지기 일쑤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선옥의 산문은 그녀의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목소리는 땅과 맞닿아 있으며 인간 중에서도 땅에 납작 엎드린, 땅에 빌붙어 사는, 땅만 바라보고 사는, 땅과 더불어 사는, 땅과 가까운 인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그녀의 삶 역시 땅과 힘껏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의 소설과 산문은 땅과 거기서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일 뿐 상상력이나 현실을 벗어난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글들은 가지런하고 예바르다. 섧고 떫은 삶의 여러 가지에 대해 말하는 말투는 따스하고 보드랍지만 단호하고 되똑스럽다. 그녀의 글은 수라와 진지보다는 입시, 강다짐과 매나니와 소금엣밥과 대궁밥과 눈칫밥과 드난밥을 먹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난 것들, 힘을 가지고 그 힘을 올바르게 쓰지 못하는 것들을 욕하는 게 아니다. 비판과 비난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예술가로서, 소설가로서의 임무는 이 두 가지를 공정하고 치열하게 해내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여정에 대한 평가는 시기상조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보는 가르마처럼 반듯하고 꾸준하다고 생각한다. 


  수록된 산문들에는 신문의 사회면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시사성이 강한 주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공선옥의 관심은 삶과 현실에 관한 것이고 소설가로 밥 벌어먹고 있다는 준엄한 주제의식을 놓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글은 개운하고 맛깔스럽고 시원하고 구뜰하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어렵지 않고 잘나지 않았다. 그게 문장의 투박함과 치우침을 감싸 안아주고 있다. 그래서 글은 낮고 작고 좁은 세계로 기울어져 있으나 이 척박한 세상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기울임이라고 꼭꼭 인정받아 마땅하다. 미주알은 똥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미주알고주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이 넘어가는 목구멍부터 똥이 나오는 똥구멍까지 샅샅이 캐내 밝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낮고 약하고 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공선옥 같은 목소리가 많이 나오길 희망한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 꼼꼼하게 할 말 못할 말 없이 시원하게 밝혀내어 온당한 이치대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란다. 이 산문집의 의미는 이러하니 이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뜬금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왜인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판치는 시대다. 그냥 넘겨들으면 될 일, 하찮게 무시하고 이내 잊어버리고 나면 말 일, 양은 냄비처럼 불콰하게 달아올랐다가 잠잠해져서 다시 일상을 살아나가면 그만일 일들이라고 넘기기에는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고 나와 그다지 멀지 않다. 내 일이 아니라고 흘려버리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큰 코 다치며 후회하는 게 인생이더라. 더구나 ‘씻나락’이라는 말은 벼의 씨, 종자를 말하는 것이다. 종자는 흉년이 들어도 결코 먹지 않는 게 조상들의 지혜이자 금기였다. 삶의 극한의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희망의 증거가 종자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하찮게 넘길 희뜩한 소리, 우습고 가볍게 지나칠만한 사소한 농담이나 시덥지 않는 말’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이렇게 섬뜩한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소리인가. 우리가 김선일이라는 죄 없는 인간의 죽음에 무관심하게 넘어가버리거나,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에 들끓어올랐다가 다시 현실에 코박고 납작하게 살아가거나, 작고 여린 생명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단식을 하신 지율스님이나 종교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단식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강의석군을 외면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의 부당함을 자살로 부르짖은 노동자들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왜면하거나, 사회적인 약자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지 않고 기억하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나 이를 옹호하는 가진 자들의 모습에 분노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 공공의 정의와 선의를 내던지거나 하는 모든 행위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분명히 책임감과 죄책감과 애정을 가져야한다. 그게 사람의 도리이고 생명 가진 인간의 도리다. 이러게 갈수록 척박하고 냉정하게 세상이 돌아가다가는 인간들은 미래에 까먹을 씻나락마저 떨어져버리고 저주받은 에리직톤처럼 자신의 몸을 뜯어먹게 될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지구를 갉아대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떨어지지 않고 그럴 턱이 없고 어처구니 있는 글을 읽어나가는 일은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다. “나는 이런 산문을 좋아한다. 지나치게 사변적이지 않고 위압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말을 자신의 어투로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그런 산문.”이라는 저자의 말대로 ‘사는 게 거짓말 같은 때’ 읽어나가면 할머니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위안의 말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는 소설 쓰는 일만으로 생계를 꾸리고 싶다.”고 공선옥은 말한다. 자신의 일로 밥을 구할 수 있는 정당한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말 그대로 전해진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꿈이 뭔지, 옳은 게 뭔지, 좋은 게 뭔지 다 안다. 그러나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이러한 인생에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건 염치 없는 일, 그래서 공선옥은 소설에만 몰두하지 못하고 이런 글을 쓴다고 말한다. 소설가로서의 예술혼을 방기하면서 나태를 부린다고 누가 그녀를 비난할 것인가. 이 시대에 필요한 존재는 할랑한 싸락눈 같은 소설 따위를 쓰는 소설가보다 꿈이자 일이자 삶인 소설을 포기하면서까지 현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소설가이다. 이 산문집은 이러한 마음의 산물이다. 그러니 어찌 애달지 않으며 어찌 씁쓸하지 않으며 어찌 울컥하면서 어찌하여 이 난장판인가 화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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