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가 두번째 잠언 시집을 내었다. 알라딘에 냉큼 주문하고 받아든 책은 표지의 도안이나 감촉부터가 마음에 꼬옥 들었다. 무엇보다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로 시작하여 같은 이의 시 '춤'으로 끝나는 이 시집은 읽는 이에게 알 듯 모를 듯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좋은 책이었다.많은 시들이 실려 있지만 하나하나가 다 인생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냥 시시덥하게 누구를 사랑했네 누구를 그리워했네 라는 얘기가 아니라 산다는 건 생존 이상의 그 무엇이며 육체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존재하는 영혼들은 그래서 삶을 잘 살아나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잘 살아가는 건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 대해 애정을 가지며 세상에 대한 열렬함을 마음에 지니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찌 보면 도덕경같은 이야기들이 운율을 따라 노래처럼 내게 다가와 심장을 에워싸고 머리에 향긋함을 더한다. 내게 있어 시는 학교에서 시험치기 위해 배우는 것에 불과했다. 시인들이 말하는 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조국을 노래하거나 연인을 흠모하거나 하는 것들 돌려 말하는 것에 불과한) 그걸 해석하는 것도 너무 진부해서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 실린 시들을 눈에 담아가면서 내가 시와 제대로 된 만남을 거의 못했었음을 깨닫는다. 아주 먼 옛날의 선조로부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방대한 스펙트럼 속에 살았던, 많이 알려졌거나 혹은 아예 몰랐거나 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한데 모아 보니 그들이 느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것이구나 생각된다. 시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반을 이루는 마음들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형식이로구나 하는 생각까지.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하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수십년 전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막막함으로 위축되고 늘 비슷비슷한 일상 속에 지루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귀기울여볼 여유조차 없다며 불평하는 동안 시인들은 삶에 대한 애정과 나에 대한 소망,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하자고 속삭인다. 나는 어느새 그들의 소리에 마음을 실어 그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소리는 맑고 영롱했다. 오염되고 타락한 음성이 아니라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의 진심어리고 순수한 권고요 초대였다.시를 외워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책을 외우는 데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는 나여서 얼마나 많은 시들을 외울런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높여 읽어가며 마음결 내가 원하는 것에 맞추어지는 공명소리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마디로, 팍팍한 삶에 나날이 지쳐가는 우리에게 한줄기 샘과 같은 글들이다. 그리고 시의 리듬에 맞추어 내 마음의 소리를 일깨우는 묘한 힘이 있는 책이고. 우리 모두를 존재 속으로 내쉬는 위대한 들숨과그 영원한 정지 속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라.그 공허감을 바깥의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말고다만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춤을 추라.<춤> 中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을 지탱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잊지 말자. 다른 무엇으로 자꾸만 나를 가리지 말고 내 안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장단에 맞추어 잠시 빌린 이 육체를 춤추게 하자. 그것이 행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