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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평점 :

여행자가 낯선 풍경에서 인생의 심연을 엿보는 것은 여행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기쁨이다. 여행의 본질은 자기에게서 떠나 되도록 자기를 멀리 벗어남에 있다. 자기에게서 해방되어 비로소 자기를 만나는 것이 여행의 보람이다. 가장 가까운 나를 만나려고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 내 어딘가의 ‘숨은 자아’를 만나는 것, 이것이 풍경의 먼 곳, 혹은 먼 곳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효과다. - 9
보는 것은 물질로 빚어진 장소의 외관입니다만, 그 장소란 시간과 포개진 무엇입니다. 장소가 펼쳐내는 공간의 무한함은 시간을 삼키고 다시 내뱉으며 변화를 이룹니다. 풍경은 시간의 유동성에 의한 충격과 변화를 떠안으며 만들어진 총체인 것이니까요. 풍경은 응고된 물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 즉 기운생동의 결과를 반영하는 상입니다. -23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사랑가야 하는 존재다” -30
누군가 인생의 맛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테다. 혼자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겠지. 인생이란 아주 씁쓸한 것만도, 그렇다고 달콤한 것만도 아니었지만,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5
결혼생활이 늘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행으로 덧칠되고 씁쓸한 것만도 아니다. 하긴 저마다 처지가 다르고 감정의 밀도가 다르고 삶의 배경도 다르니 결혼의 빚는 삶의 모양도 다양할 테다 – 45
가을이 저 안쪽에서부터 깊어간다. 바람이 분다. 아아, 다시 살아봐야겠다! 가을 오후, 마음의 근심들을 내려놓고 책을 읽다가 혼자 웃는다, 얼굴이 환해지고 입가에는 절로 웃음이 떠오른다. 무르익은 열매가 터지고 야산 언덕에 구절초가 흐드러진 이 계절이 좋다. 가을밤은 일찍 오고, 창가에 등불을 밝힌 채 귀뚜라미 우는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책을 읽을 때, 아아, 이 가을, 내가 살아 있음이 미칠 만큼 좋다. – 67
물은 지위, 재산, 권력과 상관없이 날마다 입을 통해 들어와 몸에서 순환하고, 일부는 땀과 오줌으로 나간다. 내가 걸을 때마다 이 물은 내 몸속에서 출렁인다. 나는 걸어 다니는 작은 바다다. -71
오늘 우리가 겪는 시간의 권력은 항상 현재에 집중한다.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지루하고도 유쾌한 시간의 철학]에 따르면 이 말은 “과거를 저장하고 미래를 경영하며 시간 사건들의 촘촘하게 짜인 네트워크를 현재에 씌우는 것”을 뜻한다. 지금 이 세기를 사는 이들은 대개 정밀하게 짜인 시간 계획의 통제 아래 놓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74
지구 자기장으로 방향을 가늠하며 날아가는 철새들과 국경을 넘어 떠도는 배낭여행자들은 한군데 정주하지 않고 떠돌며 산다는 점에서 닮았다. 세계를 떠도는 것은 호모 노마드다. /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삶을 구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다 결국 많은 것은 작은 것이요, 작은 게 큰 것이다. 가진 게 많을 때 덜 자유롭고 가진 게 적을 때 잃을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75
그 찰나 뒤늦게 이 밤이 내가 겪은 이전의 어떤 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놀라워라, 인류는 항상 모든 밤을 단 하나의 밤으로 겪어내는 것이다. -83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89
나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 시도도 하지 않고 주저앉는 것이다. 시도했으니까 실패한다. 시도가 없었다면 실패도 없다. 실패에 자책하지 마라.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실패한 경험이 훗날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 살아 있다면 계속 움직이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라 -149
실패했다고 주저앉는 사람은 태양을 잃었다고 우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가 어리석은 것은 우리가 태양을 잃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인 까닭이다.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태양을 잃었다고 울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려 별을 볼 수 없게 된다”라고 했다. 태양이 하늘의 유일한 별은 아니다. 태양이 진 뒤 어둠 속에 별들 수천억 개가 떠오른다. 별들은 떠올라 영롱한 빛을 반짝이는데, 이는 실패 뒤에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이 반짝이는 것과 같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라. 아직 목적지에 닿지 못했다고 투덜대지 마라. 저 멀리 보이는 목적지에서 눈을 떼지 말고 바라보면서 계속 걸어가라. -150
삶이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미정형의 것에게 형태를 부여하고, 추상의 것들을 형태로 바꾸어 고정한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내며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194
현재란 과거를 소비하며 동시에 미래를 빌려다 쓰며 빚어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오늘의 삶이란 일정 정도의 과거를 머금고 있으며, 미래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머금는 두 가지 방식은 망각과 집착이다. 망각된 것은 소진된 기억의 시간이고, 집착은 소진되지 않은 채 나를 과거에 매어두는 시간이다. 현재가 미래를 끌어다 쓰는 유력한 방식은 희망과 상상이다. 우리는 망각을 딛고 상상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혹은 많은 것들을 망각 속에 묻으며 희망을 품고 오늘의 역경을 견디는 것이다. -197
새 계절은 ‘나’를 돌아보고 사는 방식과 일상을 성찰하기에,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와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고 질서를 만들기에 맞춤하다. -210
풍경이라는 책을 탐독하는 것은 걷는 자의 권리이다. 풍경은 시간대에 따라 시시가각으로 빛의 양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햇빛, 바람, 석양, 땅거미, 어둠이 걷는 자를 감싸고 동행하는데, 이때 시간은 멈추거나 유예된다. 시간은 걷고 있는 지금 이 찰나에 멈춰져서 움직이지 않는다. -232
나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다. 자신이 만든 도구에 속박되어 도구의 도구로 살지 않고 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284
당신, 울 일이 있을 때 조금만 덜 울고, 웃을 일이 있을 땐 조금 더 크게 웃어주세요. 당신은 웃는 모습이 예쁘니까요. 나는 날마다 청송 사과 하나씩을 깨물어 먹고, 만 보씩을 걸으며, 어떻게 살아야 세상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는가를 궁구하며 살겠어요. 잘 있어요, 당신. -293
사유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책.
글의 모든 제목이 '~~에 대하여'로 형성되어있다.
사소한 단어나 존재들을
그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는
나의 사유가 얼마나 얕은지,
사유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한 번으로 부족하다.
여러 번 읽어보며 깨달아야겠다.
좋은 글귀와 배울 점이 너무 많아
포스트잇, 인덱스 천국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