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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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라는 사람의 표류기, 생존기이다. 보통, 이런, 비극적인,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생사가 오가는 스펙터클한 이야기의 경우, 극적인 제목을 붙일 만도 한데, 작가는 책의 제목을 라이프 오브 파이’, , 파이의 삶으로 정했고,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왠지 허클베리핀의 모험과 같이 제목으로 명확하게 암시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제목만 봐서는 생존기라고 추측할 수 없기 때문에,(내가 그랬다) 책을 읽고 나서 더 궁금해졌고 작가가 그려놓은 소름도는 빅피쳐를 맛보았다
 
  소설은 파이라는 인물이 주체가 되어, 1인칭 시점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감정을 표출한다. 어린 시절부터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까지, 배의 침몰과 동물의 약육강식, 뱅골 호랑이와의 표류기에 이르는 모든 순간이 파이의 서술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의 80% 이상이 생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은 그가 처한 필사적 생존 상황보다는 그의 삶에 집중한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었던, 종교의 구분을 초월한, 신 그 자체를 사랑한 파이의 어린시절 에피소드를 통해, 파이가 참 특이한 캐릭터라고 여기고 지나갔었는데, 배가 난파하고 생존이 시작되면서 깊어지고 진지해지는 신에 대한 믿음을 보면서,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다 복선이었고, 이 소설의 한 축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죽음의 두려움에 침몰하며 희망이 잠식되어 가던 표류 초반과 달리, 점차 기나긴 표류에 적응하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고 의지해가는 후반부에 다다르면, 파이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가며 매시간마다 기도를 한다. 위기의 순간에 절박함의 산물로 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초월한 신에 대한 믿음을 표출하는 파이의 모습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다른 이야기, 동물들과 함께 했던 표류가 사실은 비유적인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둘 중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모른다. 이 부분에서 믿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 같다.

   어떤 것을 믿을지는 나의 믿음에 달려있다는 것.
좁게는 두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믿을지에서부터, 넓게는 신에 대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내가 선택한 믿음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에 따라 나의 시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변화하고 태도가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작가가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가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세상 넓은 바다에서의 표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지만 표류하기도 한다. 우리가 곧 파이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살아내가는, 생존하는 주인공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갈지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믿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해야 하는가'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한 10번 정도 읽어야 할 듯하다. 매우 심오하며 어렵다.

+ 강렬하고 인상 깊은 일러스트들 덕분에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그림들만 보아도 새롭다. 인상주의가 떠오른다.
인생책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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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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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계절을 탄다는 것, 특히 가을을 탄다는 말이 너무 싫다.
가을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중도를 지키는 내가 최애하는 계절이지만, 중도를 지키는 가을이 사람의 감정을 싱숭생숭 뿡까뽕까하게 흔들다니! 최애 계절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최애의 계절이 나 다시 돌아왔다고 얼굴을 내미는 순간, 가을을 타기 시작했다. 가을 타기 싫었는데, 나의 정신은 가을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해버렸다.

가을을 탄다는 건, 커플들을 제외해버리고~ 솔로들에게는(~~) 지난 남친이 떠오르고, 과거의 사랑했던 찬란한 시간들이 그립다 가도, 왜 현재 내 옆에는 남친이 없는 것인지, 왜 나는 솔로인 건지, 왜 나는 외로운 건지,,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아성찰도 아닌 것이 자아비판도 아닌 것이 아무 결실 없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다.

그런 찰나에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라는 에세이, 그것도 뮤직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사랑이 달다니, 끈적하다니, 오랜만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 문뜩 궁금해졌다.
하지만 솔로의 삶이 오래되면 아가페, 플라토닉 러브만 넘쳐나다 보니, 이성적인 러브(에로스?)의 존재를 잊어버려, 일단 박상 작가님이 말하는 달달해서 끈적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보기로 했다.
 
처음 책 표지만 보고 제목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나는..ㅋㅋ 온전한 제목을 읽는데 찰나의 순간이 필요했다.
사랑에 관한 뮤직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책 속에는 사랑과 사랑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뮤직 에세이는 처음인데,
각각의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와, 왜 이 노래가 작가에게 울림인지, 일기인 듯 일기 아닌 일기 같은 문체와 형식으로 유머를 한가득 머금음 글이 생성되어있다.

뮤직 에세이 속에 담긴 삶의 지혜와 유머, 가볍고도 무거운 진지함이, 유머로 포장되어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친근함 속 가볍지 않은 통찰과 시선이 녹아있어 
이 에세이는 '츤데레 문장 밭 같다. 

박상 작가님의 매력은!!!
유머와 장난기 섞인 상상이 가는 그런 말투의 문체로, 친근한 오빠와 이야기하는 듯한 최면에 빠지다가도! 뼈 있는 옳고 생각해볼 만한 문제와 그의 생각을 툭 던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 오~ 존멋~ 심쿵~'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이 문장은 음악의 미학을 쉽고 재미나게 알려준 것 같아, 너무 마음에 든다.
나에게 있어 음악은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데, 그래서 음악은 너무 소중하고, 내가 느낀 음악에 대한 감정이! 박상님께서 이렇게 친근하고 똑 부러지게 설명해주다니!!!! 너무 희열을 느꼈다!!  속이 뻥 뚫린 이 기분~

음악이라는 백신...크~ 말의 장인이시다.
멋지다.. 친근한 언어와 고급진 언어를 자유자재로 콜라보해 이렇게 옳고 멋진 문장을 생성하시다니..
책장을 넘길수록 박상님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학교 등교할 때, 지하철 안에서, 수업 쉬는 시간에, 가끔은 수업 안 듣고ㅎ
틈틈이 읽었는데, 
지하철 속 휴대폰만 쳐다보는 복제인간들 사이에서 박상님이 추천한 음악을 재생해 에피소드를 읽으면, 힐링도 그런 힐링 없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고,,
음악이라는 마약 안에서 박상님의 뮤직 에세이를 읽으면
나만의 세상이 펼쳐진다..ㅎ 남의 시선 따위 개나 주게 돼버린다.

 

이 부분은 ㅋㅋㅋ<비와 당신>에피소드인데,,ㅋㅋㅋ
이 노래를 들어야만 했던 이유가 너무...웃..겨,,,ㅋㅋㅋㅋ

나는 가수나 곡에 빠지면 그것만 파는,,,
무한 반복 재생해서 듣는 그런 사람인데,
왜 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듯하다.
그냥 좋으니까 듣지였는데,
이때 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게 새로웠고 귀여웠고 인정되었다.

사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만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음악과 여행과 일상과 일기의 혼합이 더 맞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의 사랑은 내가 생각했던 사랑이 아닐 수도 있음을 느낀다.
처음 내가 생각한 사랑은, 가을의 장난질인지는 몰라도, 남녀 간의 사랑이었다.
물론 이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도 존재하지만, 이 사랑보다도,
책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느껴지는 사랑이 있다.

박상님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오지게 달달하고 끈적하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음악에 대한 사랑이든, 플라토닉 러브이든, 아가페든, 에로스든,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을 하고,
달달하고 끈~적하게 하면 되는 것!

첫 뮤직 에세이라 설렜고, 이 에세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달달함하고 끈적해졌으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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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히는 글쓰기 - 시험에 통하는 글쓰기 훈련법
최윤아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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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강력히 주장하듯이, 이 책은 시험용 글이나 자소서와 같은, 글쓰기 처방전이. 목차를 보면서 좋았던 점은, 자신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선별하여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 논술과 취업대비용으로 크게 나눠지며, 나는 취준생이기에,, 당연히 뒷 부분이 더 집중되고 도움되는 정보들을 겟할 수 있었다.

지난 학기에 학교 취업 강의로 자소서와 면접 강의를 들었는데, 자소서를 쓰는 측면에서는 강의와 겹치는 정보도 많았지만, 저자는 글쓰기 만렙이시기에, 더 구체적이고 여러 예시를 접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시범이나 예시를 보여주는 가르침이 나에게 맞는데, 이 책은 합격과 불합격의 예시를 통해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지, 왜 좋은 글인지 구체적 예시를 통해 설명하기에 마음에 들었다. 쉽게 이해가 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상상이 가서, 지난 학기 자소서 강의만 들었을 때 보다 실질적이고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면접 대비에도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파트가 유용했다.

10개 이상의 대외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기업의 자소서를 써보았기에, 비록, 취업용은 아니지만, 대외활동용 자소서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대외활동에 최종합격을 하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가 면접에서 탈락했던 경험이기에 면접파트에 더 눈길이 끌렸던 것도 하다.

면접에서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좋을지, 대부분 애드리브로 하기는 해서 떨어져도 할말은 없지만, 면접은 서류전형보다 마주할 기회도 적고 실전경험이 많지 않아 언제 해도 떨리기에 아직까지도 어색하고 무서움이 가득하다.

이런 나에게, 면접 파트는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은지, 어떤 글감을 넣는지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면접 생초보인 나에게 이런 자체가 필요했기 때문에, 약간 고민이 해소된 듯 하다.

특히 다섯 문장으로 답하라 답변의 논리적이면서도 센스있는 순서를 제시하는데, 면접 강의에서 강사님이 알려준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었다(교수님 죄송합니다. 사실이에요)
 
나는 취준생의 입장에서 책을 보았지만, 대입 논술이나 언론사, 공기업 글쓰기 시험에 더 특화되어있기에, 어떤 글이든, 형식이 존재하는 글을 써야하거나 써보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두고두고 여러 번 읽을 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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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홈트 - 카톡으로 시작하는 보통사람들의 습관 트레이닝
이범용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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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습관에 대해 생각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2n년을 살면서 형성되어온 좋고 나쁜 습관들이 무엇인지, 귀차니즘과 벼락치기를 하는 것은 습관인지 성격이지, 오늘 하루를 즐겁고 알차게 살아가고 싶음이 메인이 되어, 20세 이후에는 나의 습관을 되돌아본적이 없는 듯 하다.

수능과 대학입학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던 고등학교 시절때만해도, 매일매일 공부계획을 짜고, 나쁜 습관은 제거하려는 가상한 노력들을 해왔는데, 그 시절에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었는지 신기하면서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비록, 지금은 과거만큼,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한다거나 계획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일들에 신경쓰지 않고 살아간다. 다양한 대외활동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게 너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게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지금 내가 바쁘면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실에 만족하다보니, 나의 습과들과 더 멀어지는 거 같고, 그 중요성을 잊고 살아갔다.
 
<습관홈트>는 하루 10, 작은 일들 3개를 100%실천하며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습관들을 생성해나가는 시행착오와 사례들을 다룬다. 자기계발서에 회의를 느끼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리인 마냥 무조건적으로 답인 듯이 이야기하는 일방적인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습관홈트>는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 일반인들이 주체가 되어 습관 트레이닝을 하고, 일지를 기록하고, 결과를 제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질적이지 않으며, 공감할 수 있고, 쉽게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

또한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가 작심삼일 노래를 부르는 원인을 분석하고, 실패원인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10/작은습관/3개' 인 것이다. 특히 작은습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하루에 책 2쪽 읽기, 단어10개 외우기 등', 겉보기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야말로 쉽다고 치부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쉬운 것이 아님을 직접 실천해본다면 알수 있겠지. 주변의 유혹들과 바쁜 일정의 방해 속에서도 이를 매일 100% 실행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물론, <습관홈트>를 읽으면서,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하는 희망찬 생각들이 생성되기도 했다. 어떻게 습관 트레이닝을 하는지, 그 처음과 끝을 다 읽어보았으니, 나도 실행만 하면 좋은 습관을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하지만, 현재 책을 완독한지 일주일이 넘었음에도 생각만 있을 뿐,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역시 생각이 쉽지, 실행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책 속 도전을 한 사람들이 매우 대단해보이고 읮가 매우 강한 사람들 같다.

곧 개강인데, 막학기에는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한번 습관 트레이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하루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은 현재를 바꿀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지도 못하고, 시간을 건너뛰어 미래로 가서 미래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현재이며, 그것은 곧 우리의 하루입니다. -26

작은 습관 실천은 95%가 아니라 100% 성공해야 합니다. 습관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우리 뇌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작은 습관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50

노자는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고 적응하려면, 내 안의 수학 공식에 세상을 대입하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보라고 조언합니다. “내 안의 지식이나 수학 공식에 맞추어 세상을 재단하려 한다면, 내 작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살아가게 되니 경계하라고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 안에 갇혀 있으면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뒤처지게 됩니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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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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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를 좋아하고 자주 읽는 이유는 여행이라는 말을 입에 머금은 순간, 낯선 곳에 대한 흥미와 기대감에 사로잡혀 엔도르핀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내 모든 시간과 돈을 여행에만 쓸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 차안으로 선택한 것이 여행 에세이인 것이다.

오늘 하루만 살 것 같은 자세로, 지금 나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곳의 나와 이별한 뒤,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 듯, 정신만 그러하지 육체는 호락호락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마, 육체보다 먼저 새로운 여행지를 갈망하고 대리만족하고 맛보는 것이리라.

 

이번에 마주하게 된 여행 에세이는 <아바나의 시민들>이다.
하지만, 쿠바 여행기라는 점에서 익숙하지 않은 에세이다.
여행의 장소로 쿠바를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바나라는 생소한 이름도 낯설기에 책을 읽는 초반에는 책장을 넘겨야하는 손가락들도 어색함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했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당신이라는 2인칭시점으로 작가의 감정과 생각들을 써내려 간다는 것이다. 이때였다. 문장의 주어를 당신이라고 칭하는 것의 오묘하면서도 역설적인 매력을 느낀 게.

책을 읽는 초반에는 작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당신이라 칭하며, 독자 당신에게 말하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작가 자신의 자아에게 그 순간 작가가 느꼈던 느낌과 감정들을 추억하며 고백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더 이상 작가가 아닌, 내가 되어, 내가 진짜 쿠바에 가서 느낀 나의 체험이 되고 생각이 되고 감정이 되는, 감정 이입 이상의 새로운 것이 된다.

또한, 쿠바에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쿠바에서의 나날들을 기록하는데, 신선했던 것은 사진 속 피사체들의 생각과 감정을 추리하는 작가의 시선이다. 보통 여행 에세이는 여행지의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들의 나열(보통은 인물보다는 배경이 많은), 그 속에서 추출된 작가의 사색과 통찰을 기록한 것이 많지만, <아바나의 시민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론 배경적인 사진들도 잇지만, 쿠바의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을 찍힌 순간에 피사체들이 느꼈을 감정이나 생각들을 추측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과, 사진을 찍은 작가 본연의 1인칭 시점이 동시에 담겨, ‘당신이라는 표현으로 혼합되, 너무 주관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객관적이지도 않는, 솔직하고도 담백한 쿠바와 시민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스마트폰과 함께하며, 전자기기로 도배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에서의 삶과는 정반대인, 소수의 와이파이존이 이상하고 불편하지 않으며, 스마트폰보다는 사람들과 나 자신과 풍경들 속에서 특유의 여유를 장착한 쿠바 사람들의 모습이, 책장을 넘길수록 복잡한 내 머릿속을 잔잔함과 평화로움으로 물들였다.

 고도의 스마트화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게 발전이며,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여태까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지만, <아바나의 시민들>을 읽으며 오랜만에 삶이 풍요롭다는 게 어떤 것일지생각해보게 된다.

쿠바의 삶은 스마트화와 발전과는 거리가 멀고, 발전과 성과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고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쿠바의 그들은 여유를 즐길 줄 알고, 자신을 자연 속 배경으로 물들일 줄도 알며, 순간에 취할 줄 안다. 낯선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경찰을 부르거나 경계하지 않고,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간을 보거나 재지 않는다. 나와는 정반대인 그들의 모습이, 어느새 자본주의에 물들어 각박해진 나에게 물음을 건넨다.
 
백민석 작가의 쿠바가 나의 쿠바가 되고, 같은 시간 속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낯설지만 부럽기도 한 삶을 따라가본 따뜻하면서도 평화롭고 잔잔한 여행 에세이다.



목마름과, 이런전런 사고와, 격렬한 햇볕에 반비례하는 어두운 상념 속에서 문득 당신은 중얼거리게 된다. 고통과 즐거움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에스프레소의 쓴맛처럼 고통이 때론 즐거움의 풍미를 더 깊게 할 것이라고. -53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아바나에서 가장 볼만한 피사체인데, 사진은 휘발될 운명의 추억에 물상을 부여해, 한정된 형태로나마 현실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당신은 그러니까 그들을 당신의 남은 생애만큼 당신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76

이제 당신의 이웃들은 음식점이나 근린 공원처럼 모이라고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면 모이지 않는다. 당신의 이웃들은 벤치에 앉아 잡담할 만큼 한가롭지 않으며,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이웃이 알까봐 전전긍긍한다. 서로 일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서로 대충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당신은 아바나의 시민들 앞에서, 평화롭고 정겨우며 서로를 속속들이 알던 당신의 과거에 잠시 다녀온 듯한 기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168

당신의 기억력은 믿을 수 없고 당장 망각이 걱정스럽다. 혹자는 사진에 찍힌 것만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진 없는 추억들은 언젠가 휘발되어, 오염되고 왜곡된 흐릿한 흔적만 남게 되지 않을까.-172

하지만 절망에 대한 감각은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찰나적 감각이다. 인간은 절망을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한다. 인간은 잠시도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금세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절망은 쉽게 휘발적이다. -198

익숙한 삶의 습관을 가차 없이 하루아침에 포기해야 할 때의 흥겨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아바나는 인터넷 중독을 치료하는 아주 훌륭한 휴양처가 된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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