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아 1
김인숙 지음 / 청어람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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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이름이 제목이다. 초반부터 흥미를 자아냈고 전개 역시 스케일 크게 진행되었다. 두 주인공들도 주인공이지만 남자조연으로 나온 정석이 더 시선을 끌었다. 이것은 실수처럼도 보인다. 주인공 위주로만 진행되는 것은 문체나 형식이 편협해지고 가벼움의 우려가 있어 지향되나 주인공보다 조연에게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주변을 중요하게 다루되 흥미를 위해서는 주인공 시점으로 그를 다룸이 훨씬 낫다 생각한다. 흠, 나만의 이론이라기엔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말을 했다. 대세라는 뜻일지도...

흥미를 분산시키고 주인공에게 감정을 몰입할 수 없게 만들어 약간 아쉽기도 했다. 그렇다고 작품전체를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 나름대로 스펙타클하고 시대의 아픔을 잘 살린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소령이었다면...

로맨스라는 장르를 염두해 두고 따져보면 희랑(남주)은 최고의 신랑감은 아니다. 그는 사랑을 위해서 사랑만을 택할 남자는 아니었다. 다 버리고는 행복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모두 버리거나 모두 얻거나...

이 작품에선 모두 얻었다. 물론 친구들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반면 정석(남조)은 모두를 버려도 사랑만은 버리지 못하는 남자다. 로맨스 주인공 감으로는 최상이다. 나는 그를 더 그리워한다. 소령도 어쩜 동정이라는 감정으로 위장한 사랑을 느낀 것 같다. 시대적 부산물로 한 남자에게 몸주면 마음도 주고 인생을 바친다는 섭리를 따랐다고 느껴졌다.

첫사랑이었고 그것에 최선을 다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석의 페이지 할애량을 줄이고 적절히 분배했다면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석은 너무 넘쳤다. 애초에 그를 주인공으로 여기고 작품을 진행하지 않은 작가에게 원망이 들 정도로 넘쳤다. 그는 그렇게 사장시키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정석, 희랑, 소령...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허탈한 감정으로 이들 세사람을 덮는다.

작가님께 흔한 말을 남기고 허접한 글을 마치려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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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큰노미님의 "화연(뜻밖의 보물)"

화연 2권은... 솔직히 실망이다. 꽤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는 구도를 엉성하게 마무리하기 바빴다. 첫남자가 남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전개는 이해하지만 과연 그를 나쁜남자화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게 나쁜 놈으로 몰고 가지 않아도 두 남자 다 매력적으로 그려나가면서 완결을 향했다만 훨씬 무게도 있고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뒷심이 없는 작가가 비단 조윤주님만이 아니겠지만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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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큰노미님의 "비늘(애들은 가라)"

ㅎㅎㅎ 아니스베이 님의 비교분석을 보고 싶은 걸요? 전 '괴물' 읽었어요. 아니스베이님의 느낌을 적어주신다면 저도 댓글 달아드릴게요. 님의 리뷰를 보면서 제 느낌과는 어떻게 다른지 공유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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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 1
이선미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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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이다. 대작가라고 하도 입소문이 돌아서 구입했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이 딱 맞다. 이걸 필력으로 치부하기엔 어눌하다. 섹스를 얼마나 눈에 선하게 그려내는지가 필력이던가. 왜 그런 전개로 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주의 심리만은 이해했는데 남주의 행위 중 어느 한곳 이해가 가는 구석이 없다. 열광하는 팬들이 많아 내심 기대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 책이 일반소설 같다는 평들이 많은데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소설이었다면 이런 결론으로 치달았을까? 이렇게 현실을 무시했을까? 내 의견은 아니다,이다.

일반소설이라면 미유가 대오를 죽이고 살인자가 되었거나, 차라리 미쳐 버리는 걸로 결말이 났을 것이다. 비늘에서처럼 남주에게는 사랑(? 이끌림? 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로설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전개다.

사랑을 받은 적도 없으니 사랑을 할 줄도 모르는 남자의 비애정도로 독자를 이해시키느라 이선미 작가는 고생깨나 했을 거다. 몰라서 저지른 죄니 욕만 할 것이 아니라는 작가적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로설의 한계를 새삼 느끼면서 마음이 무겁다. 내게 그토록 행복을 안겨주는 로설의 본모습은 결국 이런 모습이었다. 여타 다른 강간물에서 강간미화를 녹여놓은 것처럼 미화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깊이 들여다본 비늘의 속내는 흥미위주의 강간이었다. 흥미롭게 꾸밀 수도 있는 강간. 그것이 내가 본 비늘의 모습이다.

아주 예전에 변금련전? 반금련전? 그런 영화가 있었다. 강간당한 여주가 복수욕에 차서 행했던 행위들-강간범을 찾기 위해 섹스기교를 배우고 그걸 사용해서 남성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결국 찾아낸 강간범과 거나한 정사신을 벌인다는-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간의 폐해성을 고발하기 보다는 강간일지라도 행위예술로 눈에 비쳐지는 육체의 향연으로 관객들을 미혹시켰다. 개인적으론 우웩했지만.

 
피해여성의 절망과 고뇌보다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변?반금련전과 비늘의 모습은 닮아있다. 과연 필력좋다는 평이 대부분인 작가는 강간의 흉악성을 얼마만큼 정확히 전달하는지 보려고 했는데 로설이라는 한계가 무리였나보다.

작가 이선미는 흥미로움으로 소재를 녹여놓았다. 무늬만 강간의 끔찍성을 표방하고 정작 강간을 행하는 육체의 향연만 늘어놓았다. 여주의 자살시도 같은 것도 강간이 여성에게 끼치는 해악을 그리려던 게 아니라 작가의 변명처럼 느껴졌다. 봐라, 난 강간미화를 그리는 게 아니다! 봐라, 난 이렇게 여주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그렸다! 결코 강간행위에 짜릿함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나도 강간이 나쁜 죄란 걸 안다!

그것조차 그리지 않으면 강간미화라고 난도질할 독자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보여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럼에도 즐겁게 읽었다는 독자는 분명 그 행위에서 흥분을 맛봤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끔찍하게만 여겨졌다면 재미있었다는 말따윈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가?

나도 그랬다는 것을 고백한다. 강간을 당하는 중의 여자가 어떤 심리일지 자각하지 못하고 멈추어버린 나의 지적능력(혹은 사고능력)에 경악한다.

강간의 더러운 죄질을 알면서도 작가가 보여주는 행위의 그림이 너무도 선명해 떠올려지는 장면은 원색적이었다. 원색적인 그림을 보면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함은 당연한가?

비늘에선 강제적인 행위지만 육체가 벌이는 행위를 너저분할 정도로 자세히 언급함으로써 행위자체가 암시하는 성적흥분을 유도했다. 작가의 의도가 그랬다고 여자인 내가 전율을 느꼈으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하지만 작가의 능력을 떠나, 비늘을 읽고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내가 겨우 그런 여자였다는 것이다.

여자인 내가 비늘에서 야릇한 움찔거림을 느꼈다면 남자는 오죽할까. 작가는 그것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남자의 강간은 이로써 이해가능하다. 여자가 이럴진데 남자는 강간이라는 외향적인 모양새-벌거벗은 육체, 섹스동작, 남주가 느낄 쾌감-에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하기도 무섭다. 결국 우리는 강간범을 이해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여자도 그 행위적인 모양새에서 찔끔찔끔 사타구니가 간지러운데 남자의 성기는 오죽할까. 아마 비늘에서 그렸던 강간행위 장면을 읽는 내내 아랫도리가 불뚝 서 있을 것이다. 틀린가?

많은 독자들이 작가가 보여준 만큼만 보고 따지지 말라 한다. 더불어 왜 현실과 비교하느냐며 비웃음도 짓는다. 내가 당했어도 이런 전개가 이해되냐고 전제하면, 우르르 몰려와 반기를 든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려해야지 왜 현실(나)과 결부 지어서 연계하느냐고 한다.

그런데도 난 나와 연계해 비늘을 판단했다. 내가 미유라면? 미유가 했던 몸짓들이 모두 이해됐다. 자살, 도망, 살의, 미움, 절망, 공포... 모두모두 이해했다. 나도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도...

비늘.... 어설프게 썼든 굉장한 필력으로 썼든. 개차반으로 썼든 논리로 무장해서 썼든. 강간은 강간이다. 비늘은 분명히 강간을 다뤘다. 미화시키지 않았다뿐이지 강간물이 분명하다. 작가조차도 강간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데 독자들이 알아서 편들어주느라고 남자의 불행한 역사를 들먹이면서 이해를 말한다. 심지어 용서도 말한다. 세상 여자들 다 미쳤나? 뭐? 이해? 용서?

작가에 대한 호의가, 작가에 대한 사랑이, 작가의 그 대단하다는 필력이 강간에 대한 우리네 통념조차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여자들이었다. 강간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여자였고 그걸 이해할 수도 있는 부류도 여자였다. 결국 그렇게 된 거다. 여자들이 강간범을 양산했다. 결국 여자들의 너그러운 두뇌와 사회 통념이 만나서 강간범을 계속 만들어냈다. 이게 우리의 현주소겠다...

소설은 현실이 아니니 이해가 간다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들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TV에서 보니까 폭력가정여성 보호소라는 곳에 찾아와 자기 마누라를 내달라는 미친놈들의 변명은 한결 같이 사랑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사랑해서 가뒀고 사랑해서 때렸단다. 사랑해서 못질했고(심지어 못질한 놈도 있더라) 사랑해서 강간했단다. 그걸 이해하는 당신들!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남자들이 비늘의 독자들이 변명해주는 말을 들으면 환장해서 달려들 거다. 자기들을 이해해 주니 얼마나 고마울까. 그나마 남아있던 죄의식조차 여자들이 이해해 주니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치들은 늘 변명거리를 찾고 있으니 정말 좋겠다. 이 소설에서처럼만 변명하면 되니 얼마나 좋을까.

까짓 불행한 과거가 있는 놈들이라면 강간으로 여자를 품어도 되겠네. 사랑해서, 자기 곁에 잡아두기 위해서 못 박았다는데 누가 뭐랄까. 지 과거가 헤까닥할 만치 끔찍끔찍 처참처참하면 뭐 때려서라도 여잘 차지하는 거 좋겠지.

결국 여자는 이해하니까. 여자들은 이해하니까.

로맨스를 보면서 현실에서 못 받아본 사랑을 본다. 여주인공들이 부럽고 질투나고, 그들의 행복모드에 가슴 설레고 행복하고. 잠시라도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그 순간이 좋아서 로맨스에서 손을 못 놓았다. 그런데 이젠 버려야할까 보다.

강간이 소재여서는 아니다. 강간이 불행한 남자를 이해해 줄 도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이해하지 말아라. 제발 그 남자들을 이해하지 말아달라고! 제 아무리 그 남자가 불쌍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제발 그 남자들을 용서하지 말아라.

불행한 과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한 짓들이면 이해해야하나? 비늘의 남주는 본능에(육체적욕구) 충실했을 뿐이지 사랑한 건 아니다. '내가 너 사랑하는데 넌 왜 날 사랑하지 않아! 시발아!' 이러면서 때리고 안으면 침을 뱉어주던지 도망가야 맞다.

'그래도 사랑이니 불쌍하다'고 이해하면 안 된다.

피에쑤- 여주 부친과 여주 친구의 성관계 장면이 많은 것도 너저분하다. '그들이 엉켜뒹구는 추잡한 행위를 ㅇㅇ이 발견하고 경악했다' 정도로 언급해도 전개엔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긴 독자들의 하초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느껴지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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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스 2005-10-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선미 작가를 높게 치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초반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초창기 국내 로설이 나오기 시작할때는 지금 보다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도 아직 이책 안봤는데..강간에 대한 내용이라면.. 신작 '괴물'과 비교해볼만하겠네요. 괴물도 아직 안봤는데 보신 분들 말씀이 간강 피해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들 하셨거든요..님의 의견과 같이..저도 로설에서 강간을 너무 미화하거나 용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괴물..한번 보려고 하는데 님도 한번 보세요. 그글 보시고...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ps: 요즘 로설들이 좋게 말해서 과감하게 나쁘게 말하면 야해진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야할 필요가 있는 작도 있긴 하지만.. 너도나도 좀더 야하게, 야하게 계속 써가면..갈수록 로설이 아니라..야설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큰노미 2005-10-2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니스베이 님의 비교분석을 보고 싶은 걸요? 전 '괴물' 읽었어요. 아니스베이님의 느낌을 적어주신다면 저도 댓글 달아드릴게요. 님의 리뷰를 보면서 제 느낌과는 어떻게 다른지 공유하고 싶네요.

아니스 2005-11-17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보고 나서 .. 약간 다른 생각이 든 부분이 있긴했지만.. 님께서 ps 언급하신 건..저 역시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특히 여주 아버진.. 여주 친구보다 더 이해도 안되고..필요 없는 인물인 것 같았어요. 곧 괴물을 볼건데..어떨런지..기대도 되고..조심스럽네요-분량면이나 내용 면이나- 아무래도 두꺼운 일반 소설 읽는 기분으로 도전해봐야겠습니다.ㅋㅋ
 
화연 1
조윤주 지음 / 대현문화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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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뷰를 보고 구입했는데 만족이다. 총 두권인 줄 모르고 한 권만 구입했는데 다 읽은 후에야 후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2편을 기다리는 중인데 기대가 된다. 작가가 긴장감을 유발하며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끌어가는 문장이 다채롭다. 간간이 말초신경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남자주인공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왕에게 끌린다. 하지만 첫 남자가 따로이 있으니 그와 연결될 것 같다. 아쉽다. 왕이 조연이라기엔 그의 등장장면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사사(여주이름)가 첫 남자를 내버려두고 왕과 헤헤거리는 걸로 결말이 나기엔 무리가 있다. 사사에게는 첫 남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첫 남자니까' 라는 정신적 구속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대(과거)의 여자란 육체를 준 남자에게 절대적 복종이 존재하는 시대일 테니까.

사사는 과연 어느 남자에게 더 끌리는지 지금까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런 갈팡질팡을 전혀 지루함 없이 전개하는 작가의 솜씨는 멋있다. 다른 작가가 1편을 다 읽고도 남주가 누구인지 몰라 헷갈리게 진행한다면 짜증이 날 텐데, 이 화연에선 둘 중 누가 남주로 변해도 괜찮은 전개로 이어진다. 그걸 필력이라고 하나보다.

조윤주 작가... 왜 그 이름을 여태 몰랐는지 아리송하다. 이 정도의 필력이라면 벌써 소문나도 소문났을 텐데 리뷰로도 본 적이 없다. 있었는데 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꽤 많은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나로서는 의아하다. 대현출판사라는 곳이 로맨스 출판사가 아니라서 일까?

앞으로 조윤주 작가님의 후속작을 기대한다. 아직은 1편만 읽었지만 다른 작품도 있다면 보고 싶다. 혹시 나의 허접한 리뷰를 읽는 구경꾼이 있다면 이 분의 작품을 언급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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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노미 2005-10-2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연 2권은... 솔직히 실망이다. 꽤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는 구도를 엉성하게 마무리하기 바빴다. 첫남자가 남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전개는 이해하지만 과연 그를 나쁜남자화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게 나쁜 놈으로 몰고 가지 않아도 두 남자 다 매력적으로 그려나가면서 완결을 향했다만 훨씬 무게도 있고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뒷심이 없는 작가가 비단 조윤주님만이 아니겠지만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