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족
서하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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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국내 소설단편집을 읽었다. 요즘 작품들이 대체로 트렌디하다는 데 염증이 나던 차에, 모처럼 진지하고 참신한 작가와 작품을 만난 기분이다.

  기본에 충실한 문체도 그러하거니와 무엇보다 작가의 세계관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점은 과연 프로답다. 소설집을 읽다보면 한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몇 개의 작품들은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모든 작품들이 고루 세련되고, 글쓰기 훈련이 잘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러 단편 속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읽힌 것으로 단연 소설집의 제목과 동일한 '착한 가족'을 꼽을 수 있겠다. 가정주부인 주인공이 아들과 딸, 남편을 건사하느라 마치 역할극을 하듯 능숙능란하게 변신을 거듭하는 모습은 실로 비장해 보인다. 남편도 모르게 남편의 회사에 쳐들어가서 회사의 부당처사에 상사와 담판 짓는 이 평범한 가정주부의 대범한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은 흔히 '슈퍼우먼'이라 불리는, 무엇이든 다 잘해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관념과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는 현대여성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현대사회에서의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제까지 가정이란 늘 따뜻하고 위로받는 공간이며, 가족이란 마치 서로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생각해왔다면, 적어도 서하진 소설 속에서 가족은 좀 다르다. 가정 또한 하나의 사회임을 간주하고, 그 안에서 마치 역할극을 하듯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몸짓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 성격을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매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내밀곤 한다. 그 다양한 모습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 모른다. 그 인물들은 주어진 상황에 시기적절 대처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변신과 연기에 익숙해버린 우리 모습의 반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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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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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화의 소설을 지금에야 읽은 게 아쉽게 느껴질만큼 의미있는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군더더기 없는 시원한 문체도 인상적이거니와, 작가의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국문화와 배경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역정의 이야기다. 옥수수죽으로나마겨우 연명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보릿고개' 시절에,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생명줄인 피를 팔아 가족을 굶주림과 병마로부터 구해내는 한 가장의 슬픈 이야기를,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아내와 다른 사내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일락이만 빼놓고 국수를 먹으러 간 것, 빚을 갚기 위해 아내의 짐을 싸보내는 것, 피를 팔고나서 꼭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시켜먹는 것, 자식들을 불러앉히고 아내의 비판투쟁대회를 여는 것.  이같은  비극적인 장면에서 더 크게 터뜨리게 되는 웃음이 어찌 즐거움 때문만이겠는가. 

   험난한 시대에 맞선 강한 아버지지만,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살아가는, 인간적으로는 비겁하고 나약하기도 했던 허삼관의 모습 속에서 요즘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 약점을 들추어 상처를 주고, 때론 독설을 퍼붓고, 싸움도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족을 품 안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엔 힘없이 늙어가는 자신이 애처로워 눈물짓는 그 모든 것이야말로, 우리 아버지 모습이고 가족이고 인생이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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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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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오래 산 사람, 그리고 말보다는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말은 갈수록 믿음이 간다. 밑줄을 긋고 생소한 낱말들에 대해선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처음엔 두서 없는 글 같았는데 책을 덮을 때쯤 여러 갈래가 한 뜻으로 모아졌다.

  90세의 노사제의 인생과 신앙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인생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격정적이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낸다. 

  일평생 단순하게 기쁨의 구도를 걸어간 사제답게, '단순한 기쁨'이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더불어 자유가 사랑에 봉사할 때만 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긴 하여도, 종교적 이념을 떠나서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이며, 진리와 지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종교의 왜곡성에 대한 문제와 기도의 의미에 대해 다룬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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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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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을 쫒는 아이>>에서는 결코 첫작품이라 생각되지 않을만큼 참신하고 깔끔한 글솜씨를 보여주었다면, 두번째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는 벌써부터 오래 글을 써온 작가처럼 농익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남성작가가 여성을 이토록 세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책을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꽤 두터운 책이어서 읽기 전부터 살짝 부담감이 느껴졌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작가의 재치있는 말솜씨에 압도되어 술술 읽힌다.

  하라미(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은 단둘이 살던 어머니가 죽게 되자, 명예를 실추시킬 것을 염려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시집보내진다. 또 다른 소녀 라일라는, 참혹한 전쟁통에 사랑하는 사람 타리크를 멀리 떠나보내고,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되고, 타리크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라시드의 두번째 아내가 된다. 라시드는 점차 폭력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마리암과 라일라는 탈출을 감행하지만 다시 붙잡히고 만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아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부르카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하며, 남자의 동행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으며, 남자에게 매를 맞아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는, 그야말로 마치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버린 듯한 이 불합리한 사회적 제도와 폭력성이 남성으로 대변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시드를 꼭 빼닮은 그의 아들 잘마이에게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 그녀들이 펼치는 우정 속에는 여성, 즉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강하게 끌어안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 책이 가슴 아프면서도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읽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를 목을 빼고 기다리는 소녀 마리암의 모습과 처음 시집을 가서 카불의 시내 곳곳을 구경하며 처음 맛보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설렘. 그 수줍은 듯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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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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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국내 대표 여성작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세운 그녀이기에, 새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풍선을 샀어>>. 제목이 풍기는 느낌처럼 가볍고 경쾌한 소설을 기대했으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담긴 이번 소설집은, 모두 하나같이 존재감, 정체성, 두려움, 죽음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통해 자아성찰해가는 과정을, 작가는 일상적인 소재들로 가볍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은유와 상징은 완벽에 가까울만큼 잘 들어맞고, 전체적인 구조와 구성방식은 모르긴 해도 외국소설을 많이 읽고 분석한 흔적일 것이다. 충분한 자료수집과 경험을 했을 것도 짐작케 한다. 여러모로 작가가 고심한 흔적이 그대로 느껴졌다.

  따지고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역시나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독백들이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을 뿐더러,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읽어내기 힘들었다는 것.

  작품보다 재미있는 것은 뒷부분에 달린 서평이다. 조금 비꼬아 말해서, 사실 작품보다 이 친절하고도 기나긴 서평에 더 많이 감동했다. 작품을 통해 말해져야할 것이 그러하지 못하고, 서평을 통해 숨은 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어째 지나친 듯하였다. 

  어쨌든 이 책은 그녀의 문제작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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