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데아 케이스릴러
장해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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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이 생각났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이 너무 시궁창이라서 차라리 현실의 나를 버리고 다른 세계를 선택하는 사람들


등장인물은 간단하다 술주정뱅이 꼰대 아빠 원형, 사이비종교에 빠진 엄마 순영, 경찰공무원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는 원형과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일진과 어울리면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여동생 원미. 그리고 자신의 고등학생 딸 지희가 원미 때문에 자살했다고 믿으며 이 가족을 짓밟아 버리려는 게임회사 CEO 상원.


처음에 '가족이데아'라고 하는 원하는대로 가족을 선택해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은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다. 가족들에게 상처 받은 마음을 게임을 통해 치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상원은 딸의 복수를 대신 해야 한다고 믿으며 원형을 게임 테스트 알바로 고용하고, 가상현실 속 완벽한 가족들로 인해 원형이 분노하도록 조종한다 그리고 원형은 결국 게임 속 가족들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 게임을 마치게 된다.


문제는 현실의 원형이 자신을 게임 속 캐릭터인 재벌 3세의 원형과 혼동한다는 것이다. 전 여자친구 앞에서 후줄근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원형은 게임 속 원형이 지닌 부와 권력이 실제로 자신에게 있다고 상상했고, 실제의 자신이 게임 속 그 녀석보다 가치있다고 여기며 전재산 150만원을 털어 정장 한 벌과 구두를 사기도 한다.

현실의 원형은 고작 양복과 구두 한 벌 산 것으로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게임 속 원형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 속 원형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 현실의 원형에게는 긴 후회와 불안 속에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벅찬 욕망이었다.

게임 속 원형의 일상적인 소비가 현실의 원형에게는 어리석고 충동적인 소비인 것이다.

<가족이데아>, 53p



첫 장 <이상과 현실>은 원형이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오가며 점점 게임에 빠져드는 내용이었는데, 전혀 헷갈리지도 않았고 너무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그 재밌는 게임을 접하게 된 배경에 상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니.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자기 모습 뿐만 아니라 가족을 원하는대로 직접 선택해서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소재는 너무너무 흥미로웠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원이 왜 원형의 가족들에게, 그렇게 공들여 개발한 게임을 통해 복수를 하는지 설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원은 명문대 공대생이었지만 대학생 때 잠깐 만났던 여자가 아이를 낳고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유학도 포기하고 아이만을 위해 미혼부라는 어려운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인생 전부였던 딸 지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희가 남긴 유품에는 원미의 물건과 '원미가 없었더라면'이라고 시작되는 지희의 일기장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지희의 죽음에 대한 원망은 원미에게 향하게 되었고, 지희가 죽었는데 원미의 가족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상원이 원미와 그 가족에게 향한 분노는 그들을 맹수라고 여기는 것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맹수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고 안심한다. 문명사회에서 맹수는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맹수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있다.

원미 아버지 같은 부류의 인간들. 시끄럽고 예의 없고 탐욕스러우며 감정적인 기능이 망가진 인간들. 이런 인간들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건 맹수를 밖에 풀어 놓고 번식하게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희는 죽었다.

맹수보다 위험한 인간들이 우리에 갇혀 있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바람에 딸이 죽었다.

<가족이데아>, 166p

그런데 상원이 영안실에서 지희의 시신을 보고 슬픔 대신 분노가 차올랐던 것, 지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감히 네가'라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상원의 기대와 달리 경찰의 수사 결과 원미가 괴롭혀서 자살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 등은 새로운 반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믿지 않는 상원에게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고, 정신과 의사는 상원이 *확증편향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확증편향: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상원은 <오징어게임>처럼 여기저기에 덫을 설치해두고 원미 가족이 그 덫에 걸려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지옥'에 끌어들였다. 오랫동안 지희를 동경했던 원미는 게임 속에서 지희의 삶을 살게 되면서 거기에 취해 현실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게임 속에서 계속 살려면 계속해서 환각제를 투여해야 했고 원미는 그렇게 진짜 원미를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여긴 원형은 스스로 게임을 박차고 나왔고, 오갈 곳이 없어 피시방 알바를 하며 혼자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다.

원형은 빛나고 반짝이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것들은 늘 밖에 있었다. 가졌다고 생각해도 잠깐 머물렀다 사라졌다...내 것, 내 소유는 허름한 것뿐이었다. 가족이 그랬다. 피와 살처럼 붙어 있어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다.

원형은 지난 26년 동안 가족에게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가족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려 했다. 가족을 위해 산다는 사명감이라도 있어야 삶이 누추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가족이데아>, 311~2p

철저한 고립 속에 살던 원형은 가족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상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상원은 이미 게임과 자선사업을 결합한 회사를 만들어 크게 성공해 있었고, 원형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원형은 단 한 가지 진실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세상은 오랜 인간 역사에서 반복된 폭동과 혼란, 무질서를 물리치고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세계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예외 없이 더 큰 힘이 지배해왔다는 아슬아슬한 진실을.

<가족이데아>, 352p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큰 힘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점 때문에 내가 최근에 본 <오징어게임>을 연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오징어게임>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희망을 산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한 본성이 관전 포인트였지만, <가족이데아>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가족' 역시 욕망의 대상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원형은 빛나고 반짝이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것들은 늘 밖에 있었다. 가졌다고 생각해도 잠깐 머물렀다 사라졌다...내 것, 내 소유는 허름한 것뿐이었다. 가족이 그랬다. 피와 살처럼 붙어 있어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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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데아 케이스릴러
장해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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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큰 힘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점 때문에 내가 최근에 본 <오징어게임>을 연상하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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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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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자꾸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이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하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앞으로 내 인생을 좀더 소중히 여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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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진구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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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돈은 너무 없어도 안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된다. 돈이 인간성을 결정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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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허밍버드 클래식 M 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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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프랑스와 영국을 오갔던 이들의 이야기. 최고의 책이면서 최악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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