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팬데믹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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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작과 현재, 이후를 더듬는 작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최근 나는 문학계에서 다뤄지고 있는 팬데믹 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팬데믹이 불러온 변화, 그 중에서도 ‘감정’의 변화다. 불안감, 우울, 체증과 같은 감정 상태는 팬데믹 이전에도 여러 상황에서 나타났으나, 팬데믹이 고착화됨에 따라 ‘코로나 때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일정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불안은 누군가로부터 바이러스가 옮아올 것이라는(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옮길 것이라는) 불안으로, 체증과 우울은 한없이 연장되는 거리두기 체제에 느끼는 감정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밀도를 가지게 되고, 포화상태가 되며, 우리는 이 감정을 표출할 창구를 찾게 된다. 그 감정은 대개 분노로 드러날 때가 많고, 창구는 빈번히 타자가 되곤 한다.


“진행 중인 팬데믹은 표면 아래에서 항상 끓고 있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갈등을 불러내고, 엄청난 정치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했지만 단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팬데믹은 시간이 갈수록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둘러싼 전 지구적 전망들이 실제로 충돌하게 만들었다.” _ 24면.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과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시대가 ‘일상’의 범주 바깥으로 발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두기로 인해 신체적·정서적 접촉이 필요한 이들은 고립되었고, 스트레스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보균자가 되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외출해야 하는 사람도, 외출을 삼가다 졸지에 면역결핍을 앓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비(非)일상 속에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나, 슬라보예 지젝은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건설하는, 힘들고 고통스런 길로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다(166면). 실제로 그러하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은 소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신규 확진자만 1615명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배경을 이루는 적대와 위기의 난맥상은 팬데믹의 딥 웹과 같아서 단순한 사회적 분석만으로도 풀릴 수 있지만, 팬데믹이 촉발한 초월적이고 존재론적인 재난은 다크 웹과 같아서 우리 대부분은 알 수조차 없는 영역이다.” _ 185면.


과거로 거슬러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팬데믹이 하나의 시대로 자리잡아버렸기에, 회귀를 바라기보다는 지금 상황에서 나아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불가해성의 세계다. ‘이 시국에 왜 저러는 걸까’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드는 누군가가 있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에 그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 이 시대를 언제부터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사유(思惟)하고, 사유(私有)해야 할 것이다. (낡은) 공동체가 무너졌으니, 우리는 조금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 시작에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팬데믹으로 인해 공동체적 삶에서 격리된 삶으로 이동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친밀성과 거리두기가 하나의 양상에서 다른 양상으로 복잡하게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_ 194면.


그러니 함께 ‘선택’해봤으면 좋겠다. “무지에의 의지라는 유혹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팬데믹을 사유할 것인가? 팬데믹을 생화학적 건강 문제만이 아니라 자연에서 우리 인간이 점유하는 위치와 우리의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 관계를 포괄하는 복잡한 총체성에 뿌리를 둔 어떤 것으로 사유할 수 있는가? 이 선택으로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일상성을 만들어내는 결정을 해낼 것인가?”(20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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