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8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음은 역자인 강철웅의 '변명'과 '변론'에 대한 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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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변명' 대신 '변론'으로 불러야 한다는 논의도 비슷한 정신에서 연원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소크라테스를 올곧은 인물로 세워야 한다는 결벽주의적 목적의식 때문에 '변명'이 문제 되는 측면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사실 '변명'이라는 말 자체보다 '변명'의 내용이 문제 아닌가?

소크라테스가 제대로 '변명'되는 것은 '변론'이라는 이름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변명'의 내용에 의해서다. 소크라테스가 처했던 수세적 상황과 그것을 자기 식으로 헤쳐 나갔던 의연한 태도는 '변명'이라는 말에 의해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다.

 

"'변명'이라니? 소크라테스가 자기 잘못을 인정했단 말인가?"라는 식의 딴지는, 마치 순수 이성을 '비판'하는 칸트에게 "순수 이성을 비난하는가?"라고 딴지 걸거나 '시비'지심을 중요시하는 맹자에게 "싸움을 조장하겠다는 거냐?"라고 딴지 거는 것과 비슷하다.

 

일상어가 그 원래 의미보다 더 많은 뉘앙스들을 띠게 되는 일은 수없이 많다. 옳고 그름을 따져 '비판'하고 그것에 대해 '변명'하면서 서로 '시비를 가리고 '따지는' 일이 그리 점잖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치부되는 '덜 합리적인' 유산이 우리 문화 속에는 분명히 있다. 적어도 희랍이나 구미보다는 그렇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변명'과 '비판'과 '시비', '따짐'이 폄하되어 왔다. 이런 용어들이 본래의 의미들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은 우리 토론, 논변 문화의 성숙과도 맞물려 있다. 용어의 의미를 논변 문화가 바꾸어놓을 수도 물론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자가 후자를 규정(prescribe)하고 인도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퇴색되었다고 그냥 버리면, 그 용어에 묻어 있는 우리 역사까지 함께 사라진다. 다른 용어들도 그렇듯, '변명'은 아직  폐기 처분할 만큼 오염되지는 않았다.

 

- 강철웅, <플라톤 『크리톤』의 번역과 이해의 문제>, 철학연구 제98집, pp.66-67의 주석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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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문은 출처를 밝혔듯이 역자의 논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강철웅의 역본을 제가 구입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 역본에도 왜 '변명'인가 대한 설명이 들어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에 인용한 로쟈의 리뷰를 보건대 예상이 맞을 거 같네요.

 

 

소크라테스의 변론 아닌 변명 (http://blog.aladin.co.kr/mramor/7304979)

 

눈에 띄는 것은 <변명>이란 제목이다. 일반 독자들에겐 더 친숙한 제목이지만 박종현 교수나 천병희 교수의 원전 번역판에서 <변론>이라고 옮기면서 대략 <변론>으로 굳어져 가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정암학당 전집판에서 다시 <변명>이라고 옮김으로써 '도루묵'이 돼 버렸다. 상당수 고전학 전공자들이 포진해 있는 정암학당 쪽에서 <변명>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한 간략한 해명은 이렇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고발된 혐의 내용에 반박을 가해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고발이 함축하는 바 자기 삶 전체를 향한 물음과 도전에 대해 '항변'한다.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 그러니끼 철학과 철학적 삶 자체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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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됩니다 2020-10-13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번역자의 답변은 너무 치졸하네요. ‘변명‘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 중에 그 누가 ‘따지는 일은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태클을 건답니까? 만약 그 이유로 태클을 거는 거라면 ‘변론‘이라는 대안을 왜 선호할까요? ‘변론‘은 ‘따지는 일‘ 아닙니까? ‘변명‘이 부적절하고 ‘변론‘이 적절하다는 사람들의 논지에 전혀 핀트가 맞지 않는 답변을 하고 있네요. 글 올라온 거 보니 오래 전 답변인 것 같긴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댓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