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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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 십 년 뒤의 졸업문집 : 10년 전 한 고등학교의 방송반이었던 친구들 결혼식날, 같은 방송반의 한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행방불명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 이십년 뒤의 숙제 : 20년 전 가을, 제자들과 남편과 함께 간 소풍에서 남편과 제자가 동시에 물에 빠졌다면, 제자는 10살이고, 남편은 수영을 못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 십오년 뒤의 보충수업 : 15년 전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두 남녀, 15년 전의 일을 묻고 살아오자고 했지만 우연히 멀리 떨어지게 되면서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과연 그 이야기는 무엇일까?

 

# 감상 :

최근에는 스마트폰 이용이 늘어가다보니, 확실히 종이에 손글씨로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 많이 줄었구나 싶다.

나는 아직도 우표를 애용한다. 우체국에 들려 10개씩 우표를 사서 틈이나면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기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내용은 거의 대부분 일상적으로 사는 이야기나 안부를 묻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가끔은 - 정말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자로 보내곤 한다.

<왕복서간>에 나오는 내용처럼 무겁도 어두운 그리고 묵직한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털어놓고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었는지에 대해서 털어놓곤 한다.

 

실은, 그래서 관계가 더 돈독해진 케이스도 있지만 관계가 더 나빠진 적도 많다.

10년도 넘은 친구 사이지만 서로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개인적 고민까지 털어놓지 못한 친구에게 내 삶을 조목조목 편지로 써가며 좀 더 가까운 관계를 원했다가 그 친구로부터 다시는 연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도 된 적도 있다.

학교 다닐때는 그닥 친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주소로 편지를 전달하면서 오히려 훨씬 더 친해지게 된 친구도 생겼다.

편지는 가장 사적이면서 가장 고백하기 쉬운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통하면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진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 장치적 부분에 고안해서 만들어진게 바로 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왕복서간> 말 그대로 하나의 편지가 전달되면 전달받은 쪽에서 또 다른 편지를 전달한 쪽으로 보내는. 서로 오고가는 편지의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이다.

서간문이다보니, 당연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루어진다. 

미나토 카나에의 글을 읽을 때 재미있는 것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인간의 심리표현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는데 그것의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바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이번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그 매력이 글 전체에 철철 넘친다는 것!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3개의 중편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바로 2번째 작품이다.

남편과 제자 사이에서 과연 나는 누구를 구했을까. 라고 생각해보니,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굉장히 곤란한 문제였다.

내가 그 상황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읽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선생님과 제자들의 삶 모두가 이해가 되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나머지 두 작품도 참 흥미롭다. 방송부원들 사이의 팽팽하면서도 미묘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향신료처럼 글 읽는 재미를 돋우고,

두 남녀의 알콩달콩한 연애사를 보면서 먼 낯선 땅에 떨어져있는 남자의 환경과 일본땅에서 남겨져있는 여자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 또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될 것이다. 

 

각각의 작품 마다 작다고 하면 작은 크다고 하면 크다고 할 수 있는 반전들이 존재하는데, 그 반전이 참..

예측할 수 없는 반전들이라서 그런지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뒷 부분으로 갈 수록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결말이 <야행관람차>보다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따듯한 부분으로 매듭지어져서 꽤 훈훈했다. 

왜 그렇게 언론에서들 이 작품이야말로 미나토 카나에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호평을 쏟았는지 나름 이해가 갔다고 하면 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스토리와 시점을 통해 마음껏 발산하면서,

그 완급을 조절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독자의 입장도 조금은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작가로 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늘 혀냊 나온 작품을 읽으면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다음번에는 또 어떤 책으로 독자들을 놀래켜줄까.

새롭게 진화한 그녀가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이 편지의 매력을 느끼고, 가까운 지인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감사나 위로 그리고 하고싶은 말을 전달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생각보다 글을 쓴다는 것, 그 글을 누군가를 위해서만 쓴다는 것 - 참 매력적이다.

누구나 속삭이고 싶은 진실이 있는 법이고, 그 진실을 기꺼이 들어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생각보다 참 행복한 일이니까.

 

문득, tv에서 우연히 본 <포스트시크릿>이 생각난다.

엽서를 미국 전역에 뿌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감추고 있던 진실이나 비밀을 발신인 부재 상태로 한 주소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엽서가 도착했는데 그 내용도 천차만별이었다고. 그걸 온라인 웹페이지에 꾸준히 스캔으로 공고해왔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비밀이 남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 엽서를 보낸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모두 -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법이다. 나의 경우 그 진실을 기꺼이 들어준 사람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그 진실을 털어놓으려고 했던 그 시도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진실을 어딘가에 꼭 털어놓기를. 적어도 이 책에서는 진실을 털어놓고 홀가분해진 - 그래서 좀 더 밝은 미래를 앞에 두고 있는 3가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 너무 두려워하지말기를 바란다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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