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불안 1
조선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제 막 열정과 불안을 다 읽었다.
월요일 밤부터 수요일 새벽까지 이 책 속에 붙들려 있었다. 잠시 책읽기를 멈추었을 때조차 이 소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 같다. 남녀 두 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이게 처음은 아니지만 아주 적절했단 생각을 한다. 앞의 한 권은 통째로 남자의 이야기다. 어릴 적 사고로 사촌 형을 잃은 남자는 죄의식 속에서 평생을 명분과 도덕성에 매몰되어 자기의 삶을 저당 잡힌 채 이상주의에 편승에 그럭저럭 살아왔다.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겨우 겨우 이상주의와 결별하지만 아직 불안하기만 하다.
여자는 어릴 적 가정의 불화로 남성(아버지)에 대한 적개심과 여성(어머니)에 대한 분노 또는 연민으로 결혼 생활을 일찌감치 끝내고 자유인으로 살아가려 한다.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자신과 환자들의 정신분열증과 성격장애 등 신경증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가 되겠다.
그렇지만 이게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개발도상국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한계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독특한 기업환경의 여러 가지 병폐를 꼬집고 질타하는 것은 신문기자의 눈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것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자니 어쩔 수 없이 기술되어야 하는 부수적인 것일 테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떻게 완성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느낀 사람이 자신이 살아 온 길을 돌아보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이 마흔의 자신의 모습을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변명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사십이라는 나이도 역시 완전한 건 아니다. 소설 속에 잠깐 오십, 육십 먹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참 애매하다. 아마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 쓸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작가가 오십 육십 먹기를 기다려야 하나.
이래서 좋다. 만약 책 한 권을 읽고 모든 의문이 다 풀리고 만족한다면 다시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러면 거기서 나의 책 읽는 즐거움도 끝나 버릴 텐데 난 아직 읽어야 할 것이 많고 내게 허락된 즐거움이 아직 남아 있어서 참 좋다.
<열정과 불안>은 내가 살아가는 삶을 적절하게 규정해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열정이 없다면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안고 살아가기에 불안이 너무 커서 미쳐버리고 싶다. 미치지 않으면서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는 방법, 그게 숙제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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