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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말테의 수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릴케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릴케의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나는 올해 <릴케의 로댕>을 읽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잘 몰랐다. 이번에 <말테의 수기>까지 읽어보면서 느낀 릴케를 묘사해보자면, 정말 어렵지만 수려한 문장 때문에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작가다! 마음에 드는 부분마다 인덱스를 붙이다가 갖고 있는 인덱스를 다 써버렸다.
이 책은 평범한 소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서로 연관 없는 이야기들이 몽타주 기법으로 엮여서, 읽다보면 내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건지 알쏭달쏭하다. 이 때문에 <말테의 수기>를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말고 느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말테의 수기>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년 전에 쓰였는데, 100년 전의 글이 지금의 나를 관찰한 것처럼 우울과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는 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이게 바로 고전을 읽는 이유인 걸까?
📌정말 우습다. 나는 여기 작은 방에 앉아 있다. 나, 브리게가 말이다. 나는 스물여덟 살이고, 나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는 여기 앉아 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27쪽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공기가 바닥이 나서 이제 나는 고작 내 폐가 뿜어내고 나서 버린 것을 다시 들이마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55쪽
📌모든 것을 다르게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그러나 나는 두렵다. 그와 같은 변화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두렵다. 나는 이 멋져 보이는 세상에도 여태껏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이런 내가 다른 세상에서 뭘 어쩌겠는가?
-59쪽
📌머릿속에서 숫자 하나가 자꾸만 자라나 내 몸을 다 차지하고도 모자랄 정도로 커질 것 같은 불안
-71쪽
📌내 스스로가 불러들인 이 고독은 너무나 거대해져 이제는 내 심장이 감당할 수가 없다. 내가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떠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179쪽~180쪽
이렇게 작품 전반적으로 불안과 공포가 깔려있지만, 그와 함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사랑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지속하는 것이다' (268쪽)를 읽었을 때에는 이 책의 큰 주제가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있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치 이 집의 모습이 까마득한 곳에서 내 안으로 무너져 내려 내 마음속 바닥에 부서져 있는 것 같다.
-3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다정하고 호리호리한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던 섬세하고 미묘한 표정을 그녀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마틸데 브라헤를 날마다 보게 되고서야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어땠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난생처음으로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내 안에서 수백의 세세한 것들이 한데 모여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 모습은 이제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다닌다.
-33쪽
❤️오, 어머니. 당신은 지난 어린 시절 이 모든 정적을 막아 준 유일한 분이셨지요. 당신은 정적을 몸으로 떠안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죠. "놀라지 마라. 엄마다." 당신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자식을 위해 한밤 내내 정적이 되기로 결심하셨죠. 등불을 켜는 순간, 당신은 이미 소리가 되셨어요. (중략) 당신의 등 뒤에는 오로지 서둘러 오던 당신의 모습과 당신의 영원한 길, 사랑의 비행만 남은 듯 했답니다.
-83쪽~84쪽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며 미소 지을만한 문장들도 많아서 추천하고 싶다.
😊아, 책 읽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43쪽
😊나는 나의 오래된 물건들과 가족사진 그리고 책들과 함께 그 방에서 살고 싶다.
-48쪽
😊혹시 그녀가 보는 사이 책의 페이지가 자꾸만 불어나는 건 아닐까, 그녀에게 꼭 필요한데 책에는 쓰여 있지 않은 몇몇 말들을 덧붙여 가면서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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