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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평점 :
결국 삶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삶이고, 그 그림을 읽는 것도 삶이다. 삶이 정직하게 겪게 되는 아픔과 상실에 대한, 아주 정직하고 처절한 폭로. 누군 그 폭포를 말로, 글로, 누구는 그 폭로를 사진으로, 영화로, 그리고 미술가는 그림으로 폭로한다. 폭로해야 할 만한 억울한 사연, 상실의 아픔, 견딜 수 없는 공포, 미술가는 그런 삶의 질곡을 제공한 국가와 시대에 대한 고발과 폭로로 그림을 그린다. 고발과 폭로가 아니더라도 고백이자 기록일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서경식의 세번째 서양근대미술 기행이다. 이번에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얼룩진 근대를 통해 진면목을 드러낸 인간의 모습에 대한 추적이다. 그런 상처로 얼룩진 통일독일을 돌아보았다. 서경식은 그 발걸음속에서 자신의 삶과 가족사를 반추하고 있다.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 고흐,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 등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왜 한국에는 전쟁화가 없는가?', '왜 아름다운 그림 밖에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솔직하고 정직하지 않은 게다. 슬픔과 아픔과 비탄을 표현할만큼의 적어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런 숨쉴자유조차 얻지 못한 암울한 시대를 우리는 반추하지 못하고 지나온 탓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독과 서독의 화가들은 모두 이 지옥과 같은 시대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고발하고 폭로한다. 더러운 것, 아픈 것, 비참한 것을 끝까지 주목하고 표현하려는 인간적인 고뇌, 그 자체를 표현하려고 애쓴 근대 미술작품을 통해 폭력의 시대와 정면으로 맞선 예술이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