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메이킹 (양장) - 문화 창조자의 소명을 찾아서
앤디 크라우치 지음, 박지은 옮김 / IVP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이렇게 인덱스를 많이 붙여가면서 읽은 책도 드물다. 내용이 새로워서 그런지 내가 원래 이런 부분에 무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350쪽 조금 넘는 책에 인덱스를 21개나 붙였다. 문화, 알 듯하면서도 참 어려운 말이다. 내 삶과 주변을 모두 포괄하면서도 굳이 정의하려면 망설여지는 단어. 그 문화에 대해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용두사미다. 문화라는 게 그럴 수 밖에 없는거다라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을 집어 들면서 내가 가진 기대,무언가 정답이 있을거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저자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문화적 착각은, 심각한 문화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동경하는 것이다." 

우라질 그럼 책을 읽지 마란 말인가? 답이 없다는 거잖아. 투덜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1부에서 진행된 문화에 대한 거창한 정의와 더불어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참고 인내하며 350쪽을 읽어간 노력에 비해 결론은 허무하다. 결국 문화권력은 되지 말고 섬김을 훈련하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문화의 소명을 이어가라. 그간 고민의 반복되는 결론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조금은 시작에 비해 나이브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1부의 5장 전체, 문화를 바라보고 소비하는 제스처와 자세에 대한 5가지 구분은 유익했고, 제스처와 자세의 개념은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참여하는 것에 대한 좋은 통찰을 제공한다. 더불어 문화에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적 논의의 한계 혹은 성찰도 아주 유익했다.

"세계관적으로 생각하는 데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 분석이 문화를 변화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관 학교를 세우고, 다양한 세계관 세미나를 개최하고, 세계관 서적을 집필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문화가 형성하는 가능성의 지평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 문화 재화를 창조하는 일을 대신할 수 없다. 그것들은 배관공보다는 철학자를, 예술가와 장인보다는 이론적 사색가를 좀더 많이 양산해 낼 것이다. 문화 창조자들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세계관 사상가'들이 대접받는 문화적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문화가 변화되지는 않는다"(82쪽)

2부에서 성경의 구속사적 맥락이 문화와 관련해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실례와 종말 이후의 하나님 나라에서 문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조망은 건강한 신학적 해석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된다. 2부 마지막 13장에서 니버의 한계와 더불어 새로운 대안적 해석은 아주 유익했다. 3부에서 소명은 문화창조자로 갖추어야 할 한계와 신비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문화권력에 대한 우리의 자세, 그리고 문화창조 공동체로서의 소명과 더불어 공동체를 제외한 유사 시도에 대한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개인적으론, 유익했다. 

전체의 구성에서 2부 복음이 빠지지 않을 수 없지만, 전제로 하거나 다른 책에서 다루고 3부가 2부의 자리에서 큰 그림이되고, 3부에서는 조금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그러면 학술서가 되겠지만, 이 책은 여지없이 신앙서적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기대가 너무 큰가? 아무튼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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