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 Solac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 이런 사람입니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변승욱 감독 작품-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후배가 꼭 보라고 추천한 영화였다. 얼핏 제목을 들었을 때 임팩트가 없군, 하고 지나쳐 버렸었다. 후배는 얼마 뒤 영화를 봤느냐고 물어 왔고, 보지 못했노라 말하기 미안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어찌어찌하여 영화를 구해 보면서 나는 무척 울었다. 내가 왜 이 영화를 지나쳤을까. 아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보여줄 것이 근사한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여자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빚 5억이 있고 남자에게는 정신지체 형이 있다. 상속받은 빚 때문에 라디오 공개상담을 받고 빚쟁이와 악을 쓰며 대거리를 하는 여자. 짝퉁을 만들다가 잡혀가도 깡으로 버티던 여자는 그러나, 사랑이 시작되려는 남자에게 모질게 대하고 절규한다. 그녀가 사랑으로부터 도피하게 만든 것은 5억 빚을 가진 여자와 결혼할 리 없는 차갑고도 정확한 현실이다. 타인의 고통보다 내 고통이 더 크고 아픈 법. 그녀의 부채감에 버금가는 부담을 갖고 있던 남자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성인만화와 잡지로 성욕을 해소하는 형에게 여자를 구해주고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의 어머니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조문을 한 뒤 서럽게 운다. 세상에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 작든 크든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좋든 싫든 가족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평생을 함께 돌아야한다. 가슴이 뻐근할 만큼 무겁고도 엄정한 사실이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부채로 남은 형과 함께 산으로 간다. 형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치유가 필요할 때이므로…….  그는 산에서 찍은 사진을 그녀에게 부친다. 평생 보듬어야 할 피붙이 형과 함께 활짝 웃으며 “나, 이런 사람입니다.” 외치는 것만 같다. 
  그의 사진을 받아든 그녀는 다시 꿈을 꾼다. 초등학교 시절 오후 다섯 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즐거운 나의 집”은 어린 시절의 행복을 되새기기에 충분하다. 모처럼의 휴일, 그녀는 불현듯 초등학교를 찾는다. 행복한 오후 다섯 시를 고대했건만 “즐거운 우리 집”은 들리지 않는다. 팍팍한 현실은 그녀가 바라던 노래 한 곡조의 위로도 줄 수 없는 걸까. 

  그녀의 행복은 기다리던 시간에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서글픈 얼굴로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은 것은 5분 늦게 울린 노래. 허탈한 마음을 견디며 5분을 기다려준 그녀를 보며 나는 너무나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즐거운 나의 집”을 그의 전화로 보내며 그녀는 그의 질문에 화답한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


  해피앤딩이어서 참 고마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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