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창동. 지금은 문화부 장관이 된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뭐랄까... 참 생긴 것 답지 않게 시니컬하다. 생긴 건 마치 어느 시골 학교의 마음 좋은 선생님처럼 생겼으면서 말이다(실제로 국어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오아시스를 보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걸 너무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구나. 너무나 치졸하고 너무나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을 잔인하리만큼 집어내어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구나라고.

특히 '진짜 사나이'에 등장하는, 평범한 노동자였다가 점점 투사로 변모해 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건 그의 변신이 놀라워서라든가 행동은 하지 못한 채 그저 머릿속으로만 치열한 인텔리 화자의 비겁함이 부끄러워서라든가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건 화자의 후배였다.

그 후배는 처음에 그 노동자의 변신을 적극적으로 돕고 그에 대한 기사까지 싣겠다고 하지만, 곧 그에 대해 약간은 경멸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무작정 설치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런 후배의 태도에 굉장히 공감했다. 내가 후배였더라도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알지 못한 채 그저 어디에나 나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설사 그가 본질적 문제까지 알았다 하더라도 상황이 그리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그는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인정하기 싫은 그런 부분을 너무나 정확하게 집어내어 적나라 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마치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소설을 읽는 건 자학에 가깝다. 인정하기 싫은 나의 치졸함, 비겁함까지도 모두 들켜버리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하늘등'은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주인공이 자신의 개인주의(부정적인 의미의)를 깨닫는 부분이 너무나 예리한 지적이라고 말하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건... 너무나 뻔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체를, 역사를,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던 개인이 결국은 자신 안에 갇혀있었음을 깨달으며 조금 더 큰 자아로 나아가는 건 좀 식상한 끝맺음이 아닌가...

하지만 '역사 속에 서 있는 나'로서의 깨달음을 얻게 해 준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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