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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평점 :
책을 손에 들고 지하철과 패스트푸드점에서 3분의2 가량을 읽고 나머지는 집에서 읽었다. 분량이 적거니와 한번 손에 들자 잘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누구에겐가 마지막 연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의 마지막 연인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소설속에서 주인공 마오는 15살에서 17살까지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학교도 제멋대로 가지 않고, 상식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아이다. ㅡ_ㅡ;
일본 소설 특유의 성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에 덧붙여 마오는 17살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위한다.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나머지의 등장인물 대부분도 그러하다. 이것은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불만으로 다가왔다. 이탈리아인이 등장하는데 굉장한 신사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모든 이탈리아인이 그러한 것 처럼.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특성에 좌우되는 것이지 국가가 모든 개개인의 성품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어의 선택이며 섬세한 감정의 표현, 마음의 동요를 이끌어 내는 알 수 없는 느낌들이 이야기에 들어있다. 이야기의 종반부의 일부 구절을 보자.
'나는 울음이 나왔다. 하치와 데이트도 하고 싶었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치의 방에 가서, 첫 키스를 하고 싶었다. 애가 태어나자 여기저기로 전화를 거는 하치를, 축 늘어진 배로 보고 싶었다. 신생아실에는 갓난아기가 있고, 아아, 키우기 귀찮아. 집 없는 개나 고양이를 주어, 어떨 수 없이 키우기도 하고. 그리고, 같이 바다에 가고 싶었다. 매일 수영도 하고, 해변을 산책하고도 싶었다. 또 쓰잘데없는 말싸움과 하치가 보기 싫어서, 없어지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해 보고 싶었다. 어느 쪽이 신문을 먼저 읽느냐고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무수한 히트 송이 과거가 되어가는 것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모든 잡다한 일들을, 좋으니 나쁘니 따지고만 있을 수 없는, 이미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복작복작 포함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어느 틈엔가 유유히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멎진 곳이기를.'
전혀 일상에서 즐겁지가 않고 짜증이 날 듯한 사건들도 이 이야기에서는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러한 것이 바로 작가의 일이며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누구에겐가 마지막 연인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