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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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사람들은 미국의 유명한 드라마인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토리 컨설턴트인 남자와 책임작가인 여자이고, 이 책을 내게 준 사람은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나에게 반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는 어떤 남자였다.

이 책은 남자들에 대한 희망과 환상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잔뜩 구긴 인상으로 혀까지 쯧쯧 차대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소리를 치지만, 그러면서도(또는 그렇기 때문에?) <섹스 앤 더 시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어찌나 능력들이 좋은지.

조각가 애인을 따라 파리로 갔던 캐리는 파리까지 쫓아온 돈 많고 잘 생긴 빅과 다시 합쳤고, 사만다는 유방암과 당당히 맞서 싸우며 젊고 매력적인데다 순정까지 갖춘 배우 애인과 주야불문 사랑을 나누고, 이혼하면서 멋진 아파트를 위자료로 챙긴 샬롯은 귀여운 빡빡머리 유태인 변호사와 결혼하기 위해 개종까지 한 끝에 중국 여자아이를 입양하게 되고, 미혼모였던 변호사 미란다는 아이 아빠와 사랑을 확인한 후 다시 합쳐 완전한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해서, 돈많고 매력적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뉴요커들은 모두 자신에게 홀딱 반한 남자들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사는 걸로 마무리가 됐다. 누구 말처럼, 진짜 "난년들"이다.

동전을 충분히 많이 던지면 앞이건 뒤건 어느 한쪽이 나올 확률이 결국 1/2이 되듯이, 드라마에 나오는 그 여자들처럼 충분히 많은 남자들을 만나서 연애하고 사랑하고 동거하다보면 "나한테 반해서"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할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렉의 충고대로만 하면 누구나 "난년들"의 대열에 끼일 수 있는 걸까?

미국에서도 잘 나가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을 다루던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각박한 일상과 초라한 현실과 더부룩답답한 도덕관념에 눌려 살아가는 서울라이트들의 현실에 적용되기엔 영 생뚱맞은 사례들이 많지만, 헛된 바람과 바보 같은 미련을 무 자르듯(또는 바오밥나무의 싹을 뽑아내듯) 잘라내라는 충고만큼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고, 그런 면에서는 제법 쓸모 있는 실용서라고 볼 수 있다. 행여라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걸려온 그의 전화를 놓칠까봐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혹시라도 가는귀 때문에 못 들어서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지 않을까 시시때때로 액정을 확인하는 가련한 여자들에게 이 책은 "자신이 반했거나 사랑하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지 못할 만큼 바쁜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차가운 진실을 일깨워주고는 "당신은 그 놈의 전화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시큼털털한 위로를 던져준다. 비록 "난년들"의 대열엔 끼지는 못한다해도 사랑이라는 미명(도 아닌 미련)하에 그런 취급을 참으며 세월만 보내면 당신만 손해니까 알아서 하든지말든지 하란다.

인간관계는 뭐가 됐든 때때로 힘들고 어렵지만, 남자와 여자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만나서 사랑하는 연애에는 알다가도 모를 언덕과 절벽과 늪과 막다른 골목과 광활한 벌판이 널렸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연애의 왕국엔 언덕과 절벽과 늪과 막다른 골목과 광활한 벌판이 허다하며, 당신이 지금 늪에 빠져 있고 막다른 골목에 봉착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돌아보고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걸 빠져나온다고해서 다 잘 되리라는 보장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빠져나와야 다음을 희망할 수 있으니까 웬만하면 나오는 게 좋지 않겠냔다.

그래... 인생은 짧고 남자는 많지. 그런데 그 많은 남자들은 다 어디 있는 거냐고. 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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