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충격 - 지중해 내 푸른 영혼
김화영 지음 / 책세상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책을 <지중해 내 푸른 영혼>이란 제목으로 처음 접했다. 시내의 대형서점에서 누군가 부탁해놓고 찾아가지 않았다며 건네주는 그 책의 판권엔 초판발행 1975년, 중판발행 1982년. 이미 몇 번쯤 반품된 듯한 흔적에 가장자리는 누렇게 바래질 대로 바래 바스락거릴 지경이었다.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그리고 젊음이 주는 아름다움은 안주하지 않고 늘 언제나 새롭게 출발하고 떠나고 시작할 수 있는 힘에 있다고. 하지만, 현실의 무게에 눌리고 세속의 가치에 안주해 그저 '태평무사안일방만'하게 살고 있던 나에겐, 이 책의 그 눈부시도록 맑고 투명한 청량함이 오히려 무겁고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무더위에 지쳐 밤잠을 포기해야 할 때면 언젠가의 그 청량감이 문득 떠올라 가끔씩 뽑아들곤 하는 그리운 책이 되었다.

이 시대에 문화라는 것은 이미 그 예전의 뜻과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그저 일단의 히스테리컬한 '소위' 평론가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입맛에 매스컴이 동조하거나 반박하고 나설 때 잠깐 불어닥쳐 소비되는 찻잔 속의 폭풍이 되고 만 지금, 미지의 것을 찾아 떠나는 이들에게도 이미 대량생산된 상품만이 있을 뿐이다.

떠나는 이. 너무 늦기 전에 제 가슴속의 두드림 소리에 귀기울여, 철저한 고독 속에서 확인되는, 아직 작은 숨 헐떡이고 있는 젊음을 확인하기 위해 돌연히 떠나는 이.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조하기 위해서, 물을 찾아서가 아니라 갈증 속에서 생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떠나는 이. 이 책은 그들이 아직 소유하여 이 지상에서 아직 멸종하지 않게 지키고 있는 청춘들, 그리고 그 불꽃같은 청춘의 기억들에게만 비밀스레 돌려 읽혀져야 하는 청춘회보이다.

늘 빨리 익숙해지고 빨리 포기해버리고, 남들이 한 것은 모조리 해 봐야 하되, 남들보다 한발먼저 새로운 것을 수용했노라 하는 것이 장안의 자랑거리인 이즈음. '나'를 무엇보다 앞에 세우되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결국 대량 생산, 대량 소비된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 오늘. 이 한 줄 한 줄 아름다운 글들은 비록 그 흔한 여행서 반권만큼도 현실적으로 가치있고 남에게 내보여줄 정보를 전하지는 못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무념으로 눈떠 동터오는 하늘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거나, 문명의 소리란 하나 들려 오지 않고, 어디서 무언가 바스락대기라도 할라치면 가슴 맨 밑바닥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이 몰려 일어나는 산 속의 가장 까만 하늘 밑에서 처음으로 직접 확인한 어린 시절 책 속의 별자리이거나, 하얗게 서리 내린 가을 이른 아침에 부수수하고 한 줌 떨어져 내린 낙엽 모아 태우며 멀거니 들여다보는 일었다 잦았다 하는 불길과 같다.

우리 스무 살을 지배한 경험과 사고가 평생을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아침. 내 영혼과 정신을 늘 깨어있게 해주는 그 힘. 그것은 그 날들이 다름아닌 '행복의 충격'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신에 각인을 찍되 나달나달 헤지게 만드는 외상으로서가 아니라, 한 순간 우리의 자아 100%를 사로잡아 지워지지 않는 영감으로 살아남는 행복의 충격. 그것이 이 책의 원제였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알음알음 이 책을 찾는 이들이 이어져, 다시 원래의 제목을 달고 청춘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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