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책세상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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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영혼의 처절한 복수'라는 말은 대단히 진부한 울림을 주지만, 이 책을 설명하는 데에는 여전히 유효하다. 영혼의 구원을 꿈꾸며 '필사적으로 시도했으나 이룩하지 못했던 완벽한 하나의 소설'로 마침내 문학상을 수상하며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순간, 평생을 통해 점철돼 온 배반과 상처의 결과가 필생의 완벽한 성공이 되었을 그것을 앗아간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목을 조여오는 복수. 회의하지 않는 잔인함.

천재적인 작품을 통한 영혼의 구원은 물거품이 되고, 그에게는 대신 일생일대의 오명이 덧씌워진다. 작가에게 드리우는 주홍글씨, '표절.' 그것은 그의 인간과 작가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30년 동안을 니콜라의 자신감과 천재성의 그늘에서 작고 우울하게 살아온 에드워드. 인생에서야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겠지만, 이 사회라는 연극에서 맡는 배역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어 에드워드는 성장을 멈춘 문학성을 받아들이고 니콜라의 출판 대행을 맡는다. 어느 날 에드워드의 손에 들려진 니콜라의 작품. 에드워드는 그 원고를 읽으며 그가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깨닫지만, 동시에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제 에드워드에게는 니콜라의 극적인 추락을 위한 각본을 쓰고, 소품을 준비하고, 연출을 맡는 과업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의 '연극'은 완벽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니콜라는 주인공으로 살다 주인공으로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고 동경했고, 그는 모든 것을 누리도록 축복받았다. 에드워드 또한 그를 필사적으로 사랑하고 무조건적인 헌신을 바쳤지만 이따금의 따스한 인간미라는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찬미와 질투, 그리고 증오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에드워드는 그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마침내 그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책이라는 무기를 통해 완전범죄를 이룩한 뛰어난 짜임새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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