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스모크라는 영화는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아주 짧은 이야기를 기본으로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혀 시나리오를 구성한 것이다. 아침부터 읽기 시작해서 스모크의 시나리오까지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다. 예전에 봤던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려가면서.

그런데 '블루 인 더 페이스' 부분은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는 커버를 씌워 책꽂이에 꽂아놓으려는데, 커버 날개에 적힌 소개글이 영 마음에 걸린다. 커버에 적히는 글이라면 독자로서는 그 책을 처음으로 소개받는 자리이며 첫인상을 결정하는 순간일 텐데. 출판사에서 자신들의 상품에 내건 카피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용하면, '...... 폴 오스터가 영화 시나리오로서는 처음 집필한 <스모크>의 모태가 되는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오기 렌이 폴 오스터에게 들려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영화 <스모크>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을 요약해주고 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겪은 오기 렌의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추억은 그를 14년 동안이나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도록 붙들어둔다. (......) 제목이 말하듯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는 일상의 에피소드들과 퍼즐처럼 얽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로 감독 웨인 왕은 199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폴 오스터가 공동 감독으로 참여해 주목을 받은 <블루 인 더 페이스>는 <스모크>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1) 음. 실화?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실화'라고 언급했던 것을 이렇게 따옴표 떼고 괄호 지우고 그냥 실화를 바탕으로라고 말하면 안되지.

2) 그리고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스모크>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해준 어떤 계기, 시발점, 퍼즐의 매혹적인 첫 조각이었을 뿐, '요약'이라는 건 진짜 말이 안된다. 요약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뭉뚱그려서 응축시켜 다 담는다는 뜻 아닌가?

3) 그리고 오기 렌이 휴가 하루 가지 않고, 브루클린 이외의 지역에서 밤을 지내지도 않고 늘 정해진 길모퉁이에서 정해진 시각에 같은 앵글의 사진을 찍는 것을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의 추억' 때문이라고,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린 막대사탕 떼서 빨아먹듯, 그렇게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4) 그리고 추억은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의 영화 같은 것, 그런 게 '추억'이지. 좀도둑 녀석이 흘리고 간 지갑을 어느 크리스마스날 문득 생각이 나 돌려주러 갔다가 장님 노파에게 손주 녀석 행세를 해주며 크리스마스 정신을 보여주다가 화장실에 쌓여 있는 카메라 장물 중에서 하나를 슬쩍 해서 나왔던 일을 '추억'이라고 말하고, 그 일을 그 후 14년 동안 이어진 독특한 취미 생활의 '전적인 이유'인 듯이 말하는 건 가당치 않을 것 같다.

5) 그리고 '일상의 에피소드'라는 말도 걸린다. 듣기 그럴듯한 말이라고 아무데나 그렇게 갖다 붙이면 안되지 않을까. 일상의 에피소드가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시나리오가 scene들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해서 그게 '에피소드'가 되는 걸까? 삶의 거창하지 않음, 그 거창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지만, 그렇게 누추하지도 않고, 풍족하지 않은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퉁명스럽지만 진정한 정을 나눌 소통로를 모색하고 시가 연기처럼 스러지는 삶을 대단한 미사여구로 꾸미려 하지 않는다.... 그게 과연 '일상의 에피소드' 정도의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걸까?

6) 그리고, 책 속에서 폴 오스터는 분명히, <블루 인 더 페이스>가 <스모크>의 속편은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적는 건 무슨 악취미인지. 심하게 말하면, 너무 생각없이 함부로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것 같다. 좋은 책의 좋은 감동이 사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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