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했다. 그 동안 모아 온 수면제를 털어넣고 의식의 소등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해진 그녀의 눈에 잡지의 기사가 들어온다.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스물넷. 희망과 기대로만 덧칠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나이. 사랑하는 가족과 안정된 직장과 미모까지,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베로니카는 어느 날 죽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의식에 포착된 질문. '슬로베니아는 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그러나 베로니카의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그녀는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다. 그것도 지금껏 아무도 탈출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난공불락의 정신병원. 그녀는 왜 정신병원에 와 있는 걸까? 이렇게 이 책은 몇 가지 의문을 우리에게 던지며 시작된다. 그녀는 왜 자살을 하려 했던가. 작가는 왜 뜬금없이 슬로베니아의 존재를 부각시킨 걸까. 그리고 베로니카는 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는가.

병원의 의사는 정신병을 유발하는 요인과 그것을 치유할 방법에 대한 실험 대상으로 아무도 모르게 베로니카를 이용하고, 여전히 죽기만을 바라는 베로니카는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추고 짐짓 평화롭게 운영되던 정신병원에 하나의 의문, 하나의 도발,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의 환기로서 던져진다.

베로니카는 매일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오로지 반복될뿐인 일상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자살을 결심한다.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면, 이제 남은 건 죽음뿐이므로. 그렇다면 작가는 왜 슬로베니아라는 나라와 정신병원이라는 무대를 선택했을까? (파울로 코엘료는 브라질 작가로 십대 시절에 정신병원에 드나든 경험이 있다고 한다.) 혹시 그곳이 광기가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두 가지 시각, 두 가지 무게의 광기. 정상과 그 대척점으로서의 미치광이.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1991년에 분리독립했고, 유고연방 대통령인 밀로세비치는세르비아에 대한 인종청소를 감행해 반인륜 전범으로 국제재판소에 피소되어 있다. 그것은 시대의 광기이지만, 바로 그 옆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는 일상의 삶이, 천연덕스럽게 계속된다. 시대와 다수가 인정하고 승인한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 걸으며.

자기의 꿈을 쫓는 것이, 사랑에 전부를 거는 것이, 부와 명예와 안정이 보장된 삶을 버리고 인류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 정신나간 짓으로, 미친 짓으로 간주되고, 인류의 잔인한 광기 옆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 이 세계가 작가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정신병원으로 해석된 건지도 모른다.

작가는 정신병원이라는 담 안쪽에서 친목회(Fraternity)를 결성한 채 삶과 안정을 맞바꾸지 말고, 세계의 미친 일상의 규정에서 벗어나 삶을, 죽음을, 죽음을 각오하는 삶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책은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 이 책을 덮고 일어선 우리에겐 선택이 남아 있다. 너는 마을의 우물로 내려가 모든 마을 사람을 미치게 한 저 우물물을 마시고 한 평생 미친 것이 정상인 세상에서 정상으로 살다 가려느냐, 아니면 이 미친 세상을 떠나는 미치광이로서의 너의 삶을 선택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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