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질의 농민들
안병직 외 엮음 / 일조각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의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사에 대한 연구는 일제 식민집권에 의한 피동적 근대화라는 식민사관적 명제를 탈피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른바 조선후기의 신분제의 붕괴와 각종 상인 조직의 파급을 통해 조선후기 근대화의 맹아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맛질의 농민들>에 나타난 각 단락의 연구성과를 탐독하다 보면 지금까지의 연구와는 정반대의 논지를 펴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맛질의 농민들>은 경북 예천군 대저리에 거주하는 박씨 가문의 생활사 연구서이다.귀중한 자료인 박씨 가문 4대, 120년간 작성된 생활 일기를 기초로 하였으며 전통사회를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실증 분석한 한국 근세 촌락 생활사 연구서이다. 연구자들은 그 동안의 연구가 사회적, 정치적 현실의 원인과 함께 무엇보다도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맹아론과 해체론이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고 비판하며 이 거대 담론은 이제 물러날 때임을 이 글을 통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맛질의 농민들>을 읽으며 처음 느낀 것은 막대한 분량의 사료를 데이터화 하고 그 안에 숨겨진 역사적, 문화적 변동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참으로 고된 일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는 입장에서 연구에 참여하신 여러 선생님들께 아낌없는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많은 것 같다. 경상도 지방의 한 촌락을 기준으로 전반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한다. 김필동 선생님은 서평에서 서구의 근대화는 시민혁명에 의한 급진적인 변화였다면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이 완만한 것임을 인지해야하며 또한 신분의 해체는 이 시기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중요성은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이글을 통해 맛질이라는 촌락의 일상생활사가 구체적으로 복원되었고 선물교환, 계절에 따른 사망추이 등 새로운 연구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대저리 박씨가의 넓직한 마루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곤하였다. 그 당시 노비들의 분주함과 안방에서 고집스레 불을 밝히며 일기를 쓰고 있는 박씨가 양반들. 그의 성격과 생김새가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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